오늘 한국교회의 교인들은 타락한 성직자들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가 타락한 중세교회를 방불케 하고 있다고 평신도나, 목회자들의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흘러나온다. 500년전 종교와 권력이 야합한 종교의 타락은, 가난과 질병, 그리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를 못했다.

당시 사제들은 평신도보다도 못한 윤리적인 삶을 살지 못했고, 성직자들의 성적 타락은 극에 달했다. 한마디로 500년전 종교의 타락은 성직자의 타락이었으며, 이것은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이어졌다. 성직자들의 성적타락을 차제해 두더라도, 돈을 주고 성직을 사고, 돈을 받고 천국행티켓을 팔았다.

이렇게 타락한 중세교회의 폐습이 그대로 한국교회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돈으로 성직을 매매하고, 이단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헌금의 액수로 하늘나라의 척도를 계산하는 것이 한국교회가 아닌가(?) 타락한 성직자들을 향해 교인들은 묻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의 목회현장에는 2주짜리 성직자부터 8년짜리 성직자가 공존하고 있다. 돈만 주면 성직을 살수 있다는 이야기다. 검증되지 않은 성직자들이 현장에 나오면서, 한국교회는 타락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목사가 부인을 살해하는가 하면, 자녀를 살해하고, 입양된 자녀를 학대하고, 헌금의 액수로 장로, 권사, 안수집사를 임명하는 등 성직자의 타락이 극에 달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돈이 곧 신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교회마다 강단에서 돈!돈!돈! 돈의 돈!돈! 악마의 금전이 아무렇지 않게 외쳐지고, 호화로운 교회당을 건축하여 예수님을 성전 안에 가두어 두고 있다. 그것은 분명 한국교회가 바벨문화에 길들여진 나머지 다윗 성을 쌓고 있는 결과 때문이다.

분명 성직자의 타락은 돈과 윤리적 타락과 관련되어 있다. 중세교회는 유럽토지의 3/1이 교회의 소유라고 할 정도로 부자였다. 그것은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가 너무 부자가 된 나머지, 교회마다 교인들의 입맛에 맞게 호화로운 교회당을 건축하고, 실내도 여기에 맞게 장식하고 있다. 그것은 차량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경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발붙일 곳은 아무데도 없다. 70-80년대 민중들과 함께 하나님나라 선교를 감당하겠다던 민중교회의 목사들도, 당시의 목회철학은 어디에 두고, 영미의 식민지신학과 이데올로기신학, 지배자의 신학인 근본적이고, 정통적인 신학을 따르며, 교인들에게 하나님나라의 척도는 헌금의 액수라고 헛소리를 한다. 한마디로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있는 역사의 한복판과 멀어지고 있다.

그래서 어쩌다가 보이는 뜻있는 목회자와 신학자, 그리고 평신도들은 예수님께서 활동하신 역사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하나님나라를 이루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한국교회 성직자 대부분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를 못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몰각한 채 영미의 근본적이며, 정통주의 신학이 최고인양 외쳐대고 있다. 오늘 한국적 상황에서 행동하는 교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경찰청 성범죄자 검거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464명이 성범죄로 검거되었다고 한다. 목회자의 성범죄 사실이 하루가 멀게 매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중세교회의 성직자들도 성적 타락이 극에 달했다. 14세기 초부터 근 100년 동안 재임한 교황 중 절반이상이 사생아를 두었다. 15세기말 콘스탄츠 교구에서만 성직자에 의해 출산된 사생아가 15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국교회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다.

오죽하면 목회자가 목회자들의 윤리강화를 들고 나왔겠는가? 더 이상 한국교회가 지금의 모습대로 간다면, 멀지 않아 한국교회는 패망은 강 건너 불 보듯이 뻔하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민족의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제 한국교회도 개혁과 변화를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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