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교회의 이단논쟁이 뜨겁다. 교인들 역시 이단 및 사이비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다. 문제는 누가 이단이며, 누가 누구를 이단으로 정죄하느냐는 것이다. 국민들이 보기에 대부분의 교회가 예수님께서 활동하신 역사의 현장과 거리가 먼데, 누가 누구를 이단 및 사이비를 가려낼 수 있느냐(?)는 의문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분명 이단은 성경과 다를 때, 붙여지는 이름이다. 사이비는 기독교를 가장해서 교인들에게 헌금을 강요하고, 헌금의 액수를 하나님나라의 척도라고 강조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예수님의 역사현장에 벗어난 교회, 민족과 세계의 아픔을 몰각하고 돈만을 외치는 목회자, 바리새적인 모습을 보이는 교인들을 향해 누가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분명 한국교회는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돈으로 오염돼 사이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직도 돈을 주고 사고, 장로와 집사도 돈의 액수에 따라 결정된다. 한마디로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한국교회가 이웃교회와 이웃교단을 이단 및 사이비로 정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분명 한국교회가 말하는 이단 및 사이비는 인간이 만든 교리와 영미교회를 대표하는 정통보수주의와 근본주의 신학과 신앙에서 벗어나면, 이단연구가들의 잣대로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가 아닌가(?) 특히 우스운 것은 자칭 이단연구가 중에는 단체 및 교회, 그리고 개인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과정에서 단어 하나를 잘못 사용해 오히려 이단의 올무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측 제100회 총회를 앞두고, 동 교단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가 두날개 이단성에 대한 공청회를 열면서, 한분이신 성삼위 하나님을 ‘구별’하지 않고, ‘구분’해, 합신 이대위가 삼신론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강한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한마디로 한분이신 성삼위 하나님을 ‘구별’하지 못하고 ‘구분’하는 합신측 이대위 연구결과를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교단 내 많은 교회가 두날개 성장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날개 이단성 공청회는 논란의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한 것은 합신측 이대위가 두날개 이단성 공청회에서 지적한 △삼위일체 존재방식이 공동체적 존재라는 비성경적 교리 △비성경적 가계저주론 주장 △비성경적 죄의 혈통 유전설 사상 △비성경적인 사단이 구축된 경고한 진 사상 △비성경적인 쓴 뿌리사상 △비성경적인 인간 3분설 △두날개 시스템이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건강한 교리 주장 △사단이 주님 사역조차 방해했고 공동체를 파괴하기 위해 공격했다는 성경 왜곡 △하나님이 디자인한 두날개 교회를 파괴한 콘스탄티 대제 △신사도운동의 용어와 흔적들 △다락방 사상의 흔적 △공개적으로 죄 자백 등에서, 자유로운 교회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이대위가 제기한 문제는 오늘 한국 중대형교회들이 안고 있는 문제이다. 이 지적에서 자유로운 교회와 목회자는 없다. 오히려 동 교단 이대위는 자신들이 한분이신 성삼위 하나님을 ‘구분’해, 교단 전체가 삼신론에 빠져 있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냈다. 문제는 교단적인 차원에서 성삼위 하나님을 구분해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한 어떤 해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합신측 전체가 삼신론에 빠져 있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렇게 검증되지 않은 이단연구가들이 계속해서 나타나 한국교회의 질서를 무너트리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이 이단 및 사이비로 찍은 목회자와 교회, 그리고 단체는 여지없이 해결사가 나타나 더욱 곤경에 빠트리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한번 이단으로 규정된 교회나, 단체에 속한 교인들은, 가정이 파괴되고, 혼사 길이 막히고, 사회적 소외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한국교회의 교인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를 염려하는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성삼위 하나님을 부정하는 교회와 단체를 제외하고, 이단으로 규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 모두가 이단논쟁을 멈추고, 예수님이 계신 역사의 한복판으로 나가라고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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