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인찬 목사
오늘 우리 사회는 감정조절 또는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가 위험수위를 넘고 있는 상황을 실감하면서 오늘 사회가 시민에게 적지 않게 두려움을 제공하고 있음을 본다.

‘묻지 마, 살인’이란 말이 얼마나 황당한 말인가. 원한도 아니고, 일면식도 없다. 어떤 일로든지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음이, 그 어떤 감정인(人)의 눈에 자기보다 약한 존재로 보였음이, 죽임의 사유가 된다니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러나 예수 믿는 우리들은 그 어떤 상황에서나, 어느 때든지 이런 감정이 악한 행동으로까지 발전하지 않도록 조정하고, 정화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일에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가 악에게 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롬12:21)

그러면 우리는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수위를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는가? 두 가지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악으로 악을 갚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한 일을 도모하는 것이다.

악으로 악을 갚지 않는 것은 행동보다 먼저 감정을 품지 않는 데서부터 실천해야 한다. 왜냐하면 악을 악으로 갚는 일은 보이지 않는 감정이 축적되므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들도 인정하는 바와 같이 사람의 본성에는 무서운 살인성이 늘 잠재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약 백성에게 그 복수심을 억제할 수 있는 법적인 방편을 마련해주셨다.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니라.’(출21:24~25). 이 말씀이 마치 복수와 앙갚음을 정당화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재판장의 판결에 따라 두 세 명의 증인을 두고, 해를 끼친 만큼만 보복할 수 있다는 전제의 굵은 못이 박혀 있다.

인간의 잔인성이 한계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사전 예방책인 것이다. 그 예방책의 한계를 파격적으로 상승시키는 놀라운 변화를 성경은 시도한다.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가르치신다(마5:38). 이것은 악에 대한 보응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는 절대 신앙을 가지라는 의미의 교훈이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
악에 대한 되갚음의 권세가 분명하고도 철저하게 우리에게는 없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신다.

예수님이 가르치는 중요한 진리가 더 있다. 그것은 적어도 주(主)의 제자로서 어느 정도의 도덕적 수준에서 행동해야 할 것인가의 한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즉, 십자가를 통해서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하나님의 자녀답게 즉 우리가 용서할 수 없는 원수라도 차라리 사랑해 버리라고 그 한계를 상향하신다.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는 핍박 자가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다시 기억하고, 차라리 마음껏 축복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을 향한 놀라운 반전이고 도전이다.

그리고 선한 일을 도모하는 데까지 발전하라는 명령 안에도 ‘모든 사람에게’라는 엄한 단서가 무섭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는 목적만이 결코 전부가 아니다. 그것은 원수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는 것으로 인해서 회개하고, 구원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마5:16)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는 일보다 훨씬 더 중요한 배후의 동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영(永) 죽을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시고 계신다.

우리 한번 겸손히 자신을 돌이켜 보자.

마음에 혹시 앙갚음의 본성이 꿈틀거리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어서 빨리 그 분노와 본성에서 돌이켜야 한다. 그것은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이기 때문이다. 이 불신앙이 다른 사람을 혹 해치지는 않을 수 있으나 바로 자기 자신을 해치는 무서운 독(毒)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스스로 포기하는 자학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불신앙이기도 하다.

성령의 은혜 앞에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내어 놓아야 한다. 그래서 더러운 모든 감정들을 깨끗이 씻음 받고, 우리도 주님의 교훈과 섭리를 쫓아 죽어가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