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수강 목사
기독교 교리의 핵심은 예수그리스도의 탄생, 죽음, 부활, 승천, 재림이다. 그중에 죽음과 부활은 기독교 신앙을 이루는 중심 사건이다. 하나님이 이 땅에 강림하셔서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죄인들 대신 십자가의 형벌을 받아 죽음으로 인류의 모든 죄악을 소멸하셨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시기 위해 약속하신 대로 십자가에서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부활은 타 종교에 없는 기독교만이 유일한 생명의 종교임을 만방에 선포하는 하나님의 뜻이다.

기독교의 부활 신앙을 가진 자들을 가리켜 죄로 죽었던 죄인들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죄를 용서받았다고 믿고 거듭난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들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거듭난 자로서 신앙생활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현대 기독교는 2천 년 전 골고다 산상 십자가 위에서 녹슨 쇠못을 양 손과 양 발에 박힌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저버리는 모습을 하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만약 부활 신앙을 소유했다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전반에 나타나야 정상이다.

먼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믿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날마다 고백하며 믿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그러한 고난과 희생, 죽음 그리고 부활의 신앙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요 자신과 관계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것이 현대 기독교인들의 신앙관이다. 진정 희생 죽음 부활을 신앙 중심으로 삼고 있다면 교회를 이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달라야 한다.

부활신앙이란? 이미 죄는 죽었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기 때문에 옛 죄악의 근성은 그리스도인과 상관없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게 보임이 문제다. 교회 강단 벽에 걸어 놓은 십자가 밑에서 기독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재산 싸움, 명예, 기득권, 전임 후임자간의 다툼, 계급, 빈익빈부익부의 차별, 재산가들의 교회 요직 석권, 더 크게 더 크게 짓는 건물, 헌금강요, 교인 쟁탈전, 교회 옆에 교회 세우기, 큰 교회의 작은 교회 무시하는 현상들이다.

한국 교회를 위해 목숨 바쳐야 할 지도자들 가운데 부활신앙이 없는 자들은 명예욕에 절치부심하고, 권력욕에 눈이 어둡다. 학벌에 취하여 가짜라도 받고 보며 때로는 돈을 주고 학위를 속성으로 사고팔며, 돈 되는 일이라면 목사도 성직도 없다. 단체를 조직하면 주요직책을 맡기 위해 눈이 시뻘겋고, 돈이 좀 있는 교회 목회자들은 어떤 조직도 자신의 금력으로 좌지우지하려다가 막히면 돈줄을 막거나 또 유사한 조직을 만들어 기존 조직이 유명무실하도록 방치해버린다.

거듭난 신앙이 없으면서도 강단에 서서 부흥회를 인도하는 부흥 강사들은 자신의 목회 지는 툭하면 비워두고 유명세를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겸손한 자가 아니라 제사보다는 잿밥에 눈독을 더 드린다. 이제부터는 부흥회 인도자들은 강사료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데 그럴 수 있는가? 자칫하면 예수님을 판 유다처럼 복음을 사고파는 자가될까 염려된다. 복음을 그저 받았으니 그저 주어라고 하신 주님의 뜻을 버리고 자신의 지갑만 채우려는 욕심으로 예수님을 팔아먹지 않을까 두렵다.

주일 설교 강단은 복음과는 거리가 먼 세상의 개그와 만담 같은 소재가 난무하고 성도들은 예배를 드리거나 성경 가르침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한편의 쇼를 보는 것처럼 배꼽 잡는 소리에 웃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마치면 그것을 은혜 받았다고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데 넘어간다. 그러니 복음은 다 잊어버리고 설교자의 개그 소리만 기억하니 문제가 아닌가? 부활신앙이 없는 강단의 황폐화 책임 누구에게 있을까?

2000년 전 골고다 산상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형벌을 받으신 예수님이 오늘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을 어떻게 보실까? 심히 안타깝고 서글픈 현실이다. 십자가를 높이 세워 두고 그 속에서 하는 짓이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정치인들이 종교를 앞세워 자신의 배를 채우는 모습과 흡사하지 않은가? 혹시 지금도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때에 심문 받으시던 예수님이 비스듬히 베드로를 보셨듯이 한국교회의 비신앙의 행동을 보시고 무어라 하실까?

예수님은 교회 강단 벽에 축 부활이라는 장식 글씨보다, 성가대가 준비한 고난과 부활에 대한 아름다운 찬양보다, 부활신앙이 신앙인 개개인의 심령 속에 참으로 이루어지기를 원하지 않으실까? 단 한 가지라도 믿음으로, 한마디 말이라도 거듭난 자의 언어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실까? 이제부터라도 한국교회 지도자와 성도들에게 부활신앙이 있는 부활절 예배행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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