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 통합이 한국교회에 무리수를 뒀다. 예장 통합은 지난해 총회 100회기를 맞아 ‘화해’를 주제로 그동안 교단 안팎에서 법적 혹은 정치적으로 규제 대상이 되어온 교회나 목회자를 풀어주기 위해 사면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그 대상을 검토해 왔다. 그리고 제101회 총회를 코앞에 둔 지난 9월 12일 총회장 채영남 목사가 4개 이단과 1개 이단옹호언론을 사면한다는 내용의 특별사면 선언문를 전격 발표했다.

예장 통합 총회장 채영남 목사는 이단특별사면 선포식이라는 거창한 이름에 걸맞게 “총회 창립 100주년이 지니는 역사적 희년 정신을 바탕으로 용서와 화해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그동안 반목과 갈등으로 인해 책벌받은 자들 가운데 회개하고 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자들을 100회기 총회 결의에 따라 특별 사면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로 맞이함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선포한다”고 엄중히 선언했다.

채 총회장의 거창한 이단사면식이 있은 직후 교계는 발칵 뒤집혔다. 설마설마하던 일이 현실이 되자 교단의 어른격인 증경총회장 20명이 서둘러 모여 채 총회장에게 이단사면을 취소하라고 요청했고, 장신대를 비롯한 교단 산하 7개 신학대 교수 114명이 기자회견을 열어 총회장과 특별사면위원장을 성토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교단 내 평양남노회를 비롯, 여러 노회가 이단 사면 취소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잇달아 발표한데 이어 통합이 주축 회원교단인 한교연 바른신앙수호위는 한술 더 떠 채영남 총회장과 이정환 특별사면위원장을 이단옹호자로 간주하겠다는 내용의 반박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자 예장 통합은 21일 긴급임원회를 열고 바로 다음날 총회장이 선포한 이단특별사면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채 총회장과 임원들은 교단 안팎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101회 총회에서 총대들의 결의를 받아내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으나 점점 더 악화되는 여론에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예장 통합의 이번 이단 특별사면 해프닝은 결과가 뻔히 보이는 데도 기름통을 들고 불길에 뛰어든 채 총회장의 안일한 현실인식과 이를 말려야 할 임원들이 오히려 부채질을 한 한마디로 지도부의 무능이 빚은 대참사라 할 수 있다. 결국 채 총회장이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선포”한 이단 특별사면은 불과 열흘 만에 휴지조각이 되었고, 4개 이단과 1개 이단옹호언론은 행복한 추석 선물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받았던 선물을 도로 빼앗긴 꼴이 되고 말았다.

사실 교단이 규정한 이단을 교단이 사면하는 것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은 아니다. 한국교회 정서가 한번 이단이면 영원한 이단이라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다 하더라도 세월이 흐른 뒤에 사실관계를 재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문제는 이단에 대한 사면이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정치적으로 흐를 때 문제가 발생한다.

그동안 예장 통합은 예장 합동과 함께 이단사이비에 대해서는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한국교회의 장자교단이라는 자부심과 교단 내 교회와 성도들의 이탈을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화해’를 명분으로 모든 것이 무시되었다. 정작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가 풀어줘도 된다는 사람은 빠지고 엉뚱한 사람이 특사 혜택을 받은 것이 그 증거이다.

화해와 용서를 마다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이것이 규율과 질서 안에서 선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연합기관 통합논의와 맞물려 화해와 용서를 내세워 정치적 꼼수를 부리려는 사람들이 활개치고 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을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함부로 사용하는 이들에게 이번 예장 통합의 무리수가 빚은 참사가 하나의 교훈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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