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은 “로마는 세 번 세계를 재패하고 통합시켰다. 첫 번째는 군사력으로 국가의 통합. 두 번째는 기독교로 종교의 통합. 세 번째는 로바법으로 법의 통합을 이뤘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로마인들은 일찍부터 법치주의 정신을 확립해 가치관이 다른 사람도 배척하지 않고 규율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법은 강자의 권리다. 패자가 공식적인 역사기록을 남기기 어려운 것처럼 약자는 법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없다. 로마는 승자이고 강자였기에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다른 민족에게 강제할 권리와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승자의 일방적 주장만을 늘어놓는 기록은 역사라기보다 신화다. 또한 강자의 권리만 일방적으로 늘어놓는 선언은 법이 아니라 폭력의 제도화에 불과하다. 승자의 기록이 역사로 남으려면 객관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처럼 강자의 권리인 법이 생명력을 얻으려면 보편성을 획득해야 한다. 종교나 철학, 도덕과 달리 법은 인간사회의 보편질서를 명시적으로 규율한다는 점에서 유용하고 쉽다. 법치주의를 선택한 로마인들은 제국의 운영도 보편적 법질서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봤다. 이는 다양한 가치관의 여러 민족이 혼재하는 제국을 통합하는 제도적 인프라가 됐다.

타 민족의 종교조차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던 로마인은 건축에서는 인간이 숭배하는 모든 신을 모신 만신전(萬神殿)이라는 기념비를 남겼고, 법에서는 인종. 종교. 가치관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법 정신을 담은 만민법(萬民法)이라는 걸작을 남겼다. 만민법은 지도층이 스스로 희생과 고통을 감수하면서 쌓아올린 로마사회의 무형자산이었다. 규칙을 만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준법성과 윤리의식은 모든 조직에 통용된다. 현대 기업경영에서도 사내 규칙은 조직 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돼야 한다. 최고경영자가 지키지 않는 규칙을 직원들에게 지키라고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업의 조직원이 인격에 있어서는 평등하지만 분업구조상 결코 평등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조직의 속성상 권한과 책임에는 편차가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법과 원칙의 평등한 적용이 관철돼야 함을 경영자는 기억해야 한다.(출처 : 위대한 기업 로마에서 배운다)

역사는 힘 있는 한 두 사람이 사회나 이웃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그 방향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과, 그에 따른 흥망성쇠(興亡盛衰), 희노애락(喜怒哀樂) 등을 보여 준다. 로마 역시 공화정(753 ~ 31BC), 황제제도(31 ~ 476AD),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가 기록 된 성경에서 시작 되었다”는 초기 교황제도[64(8) ~ 604AD], 그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 두 사람의 영향력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장에 얼마나 무서운 가해자가 될 수 있으며, 얼마나 행복을 누리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교훈을 던져주었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무시당하고, 짓밟히며 살아가는 힘없는 사람들의 아픔이나 고통쯤은 철저히 외면당하는 경우는 여전히 지속 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역사가 교훈하는 바를 왜 외면하며 살아가려 하는 것일까? 심지어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하여서도 울고 웃고 반성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순간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우리의 현실이 간신(奸臣), 극악(極惡)한 위선(僞善) 속에 살아가는 자들만이 성공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은 아닐까?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인간의 본성으로 돌려 버리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일들이지만, 우리 역시 아무러치도 않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럼으로 자신도 지키지 않는 말씀(법)을 남들에게는 강요하는 삶을 살면서도 괴로워 할 줄 모르는 이들이 늘어만 가는 것은 아닐까?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 3:7)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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