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구약성경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을 때에 그들의 마음과 심령으로 하나님의 계명들을 생각하면서 회개하였다 (신 302). 회개는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므로 전인격적이다 (삼상 7:3, 사 29:13). 회개는 자신의 죄책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온종일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고 음식을 금하면서 반성하기도 했다. 하나님의 명령을 벗어나서 마음대로 살았던 삶을 하나님 앞으로 다시 가져오는 것이 회개이므로 그 핵심은 하나님을 향해서 탕자가 돌이키는 것이다 (눅 15:17-20).

회개는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희망을 확정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들어있다. 마태복음 3장 2절에 의하면, 회개는 항상 어떤 사람의 죄책에 대해서 심판하고 저주하며 고발한다는 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다시 살려내는 용서의 약속에 연계되어 있다 (사 41-44:20). 이사야와 아모스 (암 9:11-14), 호세아 (2:14-23, 11:8-11, 14:2-8)는 심각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교와 배도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주문하였다.

누가복음 3장 10-14절에서, 세례 요한이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자 이에 대한 반응으로서 하나님께 회개하는 무리가 반응을 보였다. 요한은 이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 예수님의 회개 선포와 촉구도 동일한 맥락에서 선포되었으니, 회개는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기 위한 전제 조건이었다 (막 4:12, 눅 24:47). 우리는 회개가 구원으로 인도함을 받는 방법이자 길이었음을 사도행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행 3:19-20, 5:31, 9:35, 11:18, 21, 17:30, 20:21, 26:18). 요한계시록에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은 엄중한 회개의 촉구였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 3:19). 그리스도께서 아직 이 땅위에 오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베드로 사도는 주님께서 아직도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을 얻을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에서, 칼빈은 회개와 관련하여 두 용어를 통해서 의미를 밝히고자 하였다. 회개란 옛사람을 죽이는 것(mortificatio)과 새사람을 살려내는 것(vivificatio)이다. 옛자아가 죽어야 한다는 의미는 진정으로 죄에 대해서 슬퍼하는 것이며, 죄를 더욱 더 미워하는 것이며, 죄로부터 멀리 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회개는 성령의 검으로 처절하게 자연인의 본성을 죽이는 것이며, 경건의 초보를 배우는 일이다.

회개는 하나님의 사역인 동시에 인간의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기회도 주시고 회개할 힘도 주신다 (딤후 2:24). 신약성경에서 회개한다는 단어는 “에피스트레포”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주로 인간이 마땅히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해서 풀이하는 단어이며, “메타노이아” 혹은 “메타노에오”도 역시 인간의 책임성을 강조하는데 사용되었다. 돌트 신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중생을 가져오시며, 동시에 사람의 행동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풀이하였다. “이제 새롭게 된 의지는 하나님에 의해서 가동되고 동기를 부여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의지 자체 역시 능동적이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인간은 그가 받은 바 은혜를 인하여 믿고 회개하도록 촉구되는 것이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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