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는 힘이 세다 고요를 당해낼 자는 아무도 없다 제 주장을 하지 않아 늘 소음에 시달리고 주눅 들고 내몰리는 것 같지만 고요가 패배한 적은 없다. 제 풀에 지쳐 소음이 나뒹굴 때 공간을 차지하는 것은 고요다. 고요는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든 최종적 승리자는 고요인 것이다. 보아라, 고요가 울울창창 우거진 세계를!

▲ 문 현 미 교수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스피드한 세상에 살고 있다. 속도의 시대에 내몰리고 있는 듯하다. 아날로그라는 말이 그저 옛날 이야기처럼 들린다. 20세기는 음속의 시대였지만 오늘날 우리는 광속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승승장구하는 기업이 몇 년 후면 사양길로 접어들고, 한 가지 직업으로 평생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속도에 올무 잡히기도 하지만 소리에는 더 예민하게 올무 잡히기도 한다. 층간 소음 문제로 이웃간 여러 가지 불미스런 사건들이 일어나는 걸 종종 듣고 본다. 어쩌면 우리는 속도를 따라 잡다가 내면의 고요를 잃어버린 건 아닐까. 잠잠히 가슴 저 밑바닥에서 들리는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삶을 잊고 사는 것 같다. ‘고요가 울울창창 우거진 세계’에 들어가면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고 들리지 않던 것을 들을 수 있는 비밀의 문이 열린다. 얼마나 힘이 센 고요인가. 시인의 표현에 따르면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는 고요이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고 마침내 ‘최종적 승리자’가 된다는 거다. 끊임없이 소음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은 내면이 고요하지가 않다.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러다 보니 서로 소통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때에 가슴을 울리는 시 한 편이, 섬광처럼 스치는 촌철살인의 시구가 필요하다. 시는 걸음이 빠른 듯 하면서도 느리고, 느린 듯하면서도 빠르다. 시는 은하와 은하를 건너온 별이야기를 담고 있는가 하면 가을 들녘 구절초 꽃무리에도 들어 있다. 고요의 다른 얼굴을 찾아낸 시인의 눈길에 븥들리고 싶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눈! 그것은 속도와 소음에서 벗어나 묵상하고 기도하는 마음에 그 열쇠가 있는 것을... 
            
백석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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