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교회에서 진리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이상 우리는 서로 포용하고, 용납하여 형제를 세워야 한다. 견해가 다르다는 것으로 갈등을 유발해서는 안된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롬 14:1)

우리가 함부로 형제를 판단하지 않기 위해 이 문제를 다루는 로마서 14장 5~12절을 배경으로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원칙을 찾아낼 수가 있다.

로마교회 안에는 유대교가 지키는 안식일 같은 날(日)이나 유월절 같은 절기(節氣)를 놓고, 믿음이 확고한 자들은 지킬 필요가 없다하고, 믿음이 약한 자들은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주장을 넘어 서로를 비판하고, 대립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실을 접한 사도바울은 어느 한 쪽도 두둔하지 않는다. 믿음의 정도에 따라 각각 다르게 볼 수 있는 문제이므로 '각각 자기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는 말씀으로 모두를 교훈하신다.

이 말씀은 신앙양심의 가책이 없이 대처하라는 의미의 말씀이다. 자기의 신앙과 양심과 성경말씀에 비추어 확신이 서는 대로 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이다.

날이나 절기, 음식에 대한 규례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진 허용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골2:16-17). 예수님은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요, 유월절의 어린양이요, 거룩한 하늘의 떡이요, 양식이시기 때문에 그림자에 해당하는 것들을 폐기시키셨다.(골 2:14-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을 지키고, 음식을 가려 먹어야 양심이 편안하고, 은혜가 되겠다는 자들은 그대로 하게 두라신다. 비록 믿음이 약해서 그럴지라도 포용하고,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그 갈등의 소지는 훨씬 더 많다. 예배를 드리고 주일 오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주일날 업무상 여행을 해도 되는가? 주일날 운동경기장 참관이나 TV시청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주일날 자녀에게 공부를 허용할 것인가? 주일에 물건을 사고파는 일과 사회적인 활동에서 술의 허용유무? 현대음악 가운데 우리가 듣고 즐길 한계 등등의 의문들에 대해 성경은 '된다.’ '안 된다.' 고 명확하게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경이 정하는 넓은 범위의 교훈 안에서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해야 한다. 성경의 교훈과 교회의 지도를 따라 각자의 신앙적 소신대로 결정을 내리고, 실천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혜의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신앙양심으로 내리는 결정이라도 각자의 소신대로 할 때, 크게 잘못될 수 있음을 아시기에 두 가지의 원칙을 주셨다.

그 첫째는 동기와 목적이 순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마서 14:6-8절에 '주를 위하여' 라는 말씀이 5번이 반복되고 있음을 주목해야한다. '주를 위하여' 는 '주께 대하여'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무슨 결정을 하든지 견해나 행동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동기나 목적에 있어서는 '주를 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7-8절에서 '주를 위하여'에 대하여 사도는 대단히 엄숙한 선언을 한다. '주를 위하여' 에는 하나요, 둘이 될 수 없다는 선언의 이유를 9절에서 명료하게 설명한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하여' 하는 자가 된 것은 '나를 위하여'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마서 14:7-8절은 우리의 양심선언문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선언문에 가책 받지 않을 수 있는 신앙적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일 것이다.

주일성수의 대원리도 역시 ‘주를 위하여’이다. ‘나를 위하여’ 가 아니라 '주를 위하여' 라는 도전을 던진다.
둘째는 ‘주를 위하여' 한 것인지, 안인지에 대한 책임이 자기 것이라는 것이다(롬14:10-12).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롬 14:11)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롬 14:12) 얼마나 두려운 말씀인가? 주님이 배설(排設)하신 심판대는 다른 형제 일을 가지고 나가는 자리가 아니다. 나의 일을 가지고 나서는 자리다. 심판 주 되신 하나님은 나의 일을 심문하시지 다른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지 않으신다.

서로를 비판하지 않으려면 성경이 직접 말하지 않아 모호한 문제에 관한한 각자가 신앙적 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작은 문제라도 어떻게 해야 좋은가를 생각할 때에는 '주를 위하여'란 명제 앞에 겸손해져야 한다.

주님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서는 일이면 힘들어도, 많은 사람이 피하는 일이라도 하라.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하고 싶은 일이라도 하지 마라. 그러면 주일성수, 술, 담배 같은 애매한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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