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젼에서 나오는 여든 넘은 할머니의 인터뷰
물방울처럼 톡톡 튀는 리포트 아가씨의 질문
할머니는 다시 태어나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으세요?
아이고, 아무 걸로도 안 태어날끼라
한 세상, 함지박 넘치게 벅찼구만
고저(高低)를 버린 수평선 같은 할머니의 대답
나는 걸레질 하던 무릎을 펴지도 못하고
물 만난 한 조각 마른 미역처럼
널널하게 풀어졌다
방바닥엔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 출렁거리고
윗목에선 할머니의 벅찬 세상을
닮아가는 나의 해조음(海潮音)
내 소리의 날카로운 수직선에 내가 찔리고 말았다
석양에게도 수평만 허락한다던 바닷가
내 수직을 젊음이라 불러주며
동쪽 향하던 걸음을 서쪽으로 돌려 세운다
나는 남은 나이를 모두 버리고 싶었다
*모현숙: 『조선문학』 신인상, 대구형상시문학회 회원, 시집 『바람자루엔 바람이 없다』
전자는 과학적 지시어로 만든 산문이 더 유용하다. 그러나 시가 언어예술로 존재하는 이유는 후자의 성공여부에 있다는 이론이다. 예시는 단순한 인터뷰 내용을 화자와 연결해 독자를 객관적으로 설득하는 수사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 객관적이란 말은, 보이지 않는 정서를 위해 등가성의 객관상관물을 동원하여 한다는 엘리엇의 창작기법을 말한다. 할머니와 화자를 바다의 모습으로 변용시키고 있다.
예를 든다면 ‘수평선 같은 할머니의 대답’ 이나 ‘물 만난 한 조각 마른 미역’이나 ‘방바닥엔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처럼,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감각할 수 있는 사물로 보여주고 있다. ‘할머니의 벅찬 세상’이 자기의 삶과 동일시되는 모습을 ‘수직선에 찔리고 말았다’고 하는 그 표현기법도 공감을 위해 감각이미지(형상화)를 동원한 것이다. ‘석양에게도 수평만 허락한다던 바닷가/ 내 수직을 젊음이라 불러주며/ 동쪽 향하던 걸음을 서쪽으로 돌려 세운다’는 말이나, ‘나는 남은 나이를 모두 버리고 싶었다’는 말은 마찬가지 내용이며, 동일한 기법이다.
컨시트(conceit) 면에서 볼 때, 내용 이전에, 전달하는 표현법에 의해서 시의 미학성이 생긴다는 이론을 잘 변증해주는 작품이다. 보기 드문 실력이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