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외교통상부 송민순 장관의 회고록에 실린 2007년 11월 유엔의 대북인권결의안 채택 때, 우리정부의 기권입장을 북한에 사전 문의했느냐, 사전 통보 한 것이냐를 두고, 여야 간에 지루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여야가 지루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이, 미국의 민간 대북전문가와 북한 당국자는 말레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이틀간 비공식 회담을 가졌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야당은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나섰다.

문제는 우리정부의 북한과의 대화창구가 모두 막힌 상황에서, 그것도 제3국에서 북미회담이 열렸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미국은 한미동맹을 강하게 내세우면서, 뒤로 우리와 적대관계에 있는 북한정권과 비밀리에 회담을 가졌다는데 기분이 나쁘다.

특히 미국의 우리정부가 한결같이 주장하고 있는 북한 정권 붕괴, 선제 타격론, 한반도 전술 핵 배치 등 강경 일변도의 주장과 정책에 적극 호응하며, 우리정부의 입장을 지지해 왔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뒤로 북한당국자들을 만나, 북미관계 개선에 대해서 논의한 것은, 우리정부와 국민을 우롱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북미회담이 민간 차원이라고 하지만, 북한 측 참석자는 한성렬 외무성 부장, 장일훈 유엔 차석대사 등 현직 인물이고, 미국은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 특사, 조지프 디트라니 전 6자회담 차석대표 등 차기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큰 영향력을 주는 인물이라는 점에, 우리정부는 주목해야 한다.

북미회담을 계기로 우리정부는 설 자리가 없게 된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우리정부도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을 직시하고, 대화와 협상 카드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당연하다. 이같은 목소리는 대한민국이 외교적인 면에서 상당히 뒤쳐져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다 국가 기밀을 감추어야 할 외교관이 귀족의식과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공개해서는 안 될 기밀을 아무렇지 않게 까발리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것은 공적인 정의와 사랑이 실종되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제 외교관들까지 귀족의식과 특권의식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의리도, 정의도, 사랑도, 화합도, 평화도 실종시켰다. 국민들은 누구를 믿어야 하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마지막 양심으로 믿었던 외교관들마저 나라보다 자신의 이익과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니, 국민 모두는 불안하다.
이런 사이 우리국민이 그렇게 믿고 의리를 지켰던 미국이 북한당국자들과 제3국에서 비밀회담을 가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국민들은 분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여기에 대해 감각이 무딘 한국교회마저도 침묵하고 있다.
여야는 북미대화에 대해 모두 환영하고 나섰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국자 간 대화든 차기 정권 창출에 관련된 안보 참모들이 차기 대통령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대화든 다 좋다. 어떤 대화든 이해당사자 간 대화는 유익한 것이다”고 환영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도 제재와 대화를 병행해야 한다. 북미 대화가 남한을 소외시킬까 걱정할 것 없다. 그것은 한미동맹 강화로 해결될 것이다. 그게 두려우면 우리도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 대표의 지적대로 한미동맹 강화는 우리민족에게 있어 전쟁억제라는 심리적인 안정을 가져다가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한미관계에 있어 2중적인 플레이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남한이 소외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것도 아시아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최소한도 남한이 미국의 동맹이라면, 북미회담에 앞서 동의를 얻었어야 했다.

개인적이든, 아니든, 대한민국 국민은 서운하다. 지금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는 주변 국가들이 당사인 대한민국을 빼놓은 상태에서, 제3국에서 거의 논의해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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