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종교개혁 500주년이 코앞이다. 예수님이 사도들에 의해 세운 기독교회가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과 운영으로 예수님 바라시던 교회의 모형과 정 반대로 흘러가자 뜻이 있는 중세 개혁가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가 성경적으로 바르게 되기를 희망했다. 중세 이후 5백년이 된 개신교회는 지금 개혁가들이 바라던 대로 개혁된 교회가 되었는지 아니면 지금도 개혁 중에 있는지 도무지 헷갈리는 현실이다. 기독교의 시작은 창세기부터라고도 하지만 실제로는 구세주 예수께서 마구간 양 구유에 탄생으로부터 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 현대기독교는 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관이 없어 외양간에서 출생하심에 대한 깊은 뜻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종교 개혁가들이 바라던 성경의 기준으로 볼 때에 얼마나 성경에 근접한 신앙과 믿음을 보유 하였는가에 대한 자가 진단이 절실히 필요하다. 왜냐하면 중세 교회의 난맥상을 교회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고 성경과 교회가 얼마 동떨어진 모습이었는가를 교회사를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외형적으로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를 통해 성직자들은 종교권력과 부 축척을 위해 해괴한 방법을 다 동원했다. 이는 면죄부(속죄권) 판매와 성직 매매가 대표적인 예다. 하나님의 속죄 권한을 인간이 종교의 권력으로 우매한 백성들을 농락한 중세의 타락은 종교 개혁이라는 성령의 칼에 해부되었다. 그 이후 개신교라고 자처하는 교회는 세월이지나 뒤 돌아 보면 중세 교회가 저질렀던 잘못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속죄권의 판매와 성직 매매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어도 유사한 일들이 교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부정 할 수 없다.

교회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성직 즉 목회자 안수가 부정직하게 자행 되고 있는 현실과 무인가 신학교의 난립으로 속성 목회자 안수가 남발되어 누가 옳은 안수를 받았는지를 분간 할 수 없고, 개 교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장로 및 재직 임직은 순수하게 일군을 뽑아 교회를 위한 봉사 직을 감당하게 하는 것 보다는 하나의 계급화가 되어 있는 현실을 무어라 변명할 수 없다. 음으로 양으로 재직 임직을 위한 후보자들은 교회가 요구하는 상당한 기부금을 헌금 형태로 교회에 납부해야 만이 자신의 책임을 다한 것으로 제도화 된 현실은 중세의 성직 매매와 다를 바 없는 것 같아 보인다. 한국교회는 시급히 모든 성직에 따르는 비용을 부담 없이 하나님의 거룩한 일군을 선정함이 필요하다.

중 대형 교회가 우후죽순처럼 난립한 가운데 중세에도 없었던 특별한 일은 교회가 한해 쓰고 남은 돈에 대한 처리 문제다. 지금 한 해 쓰고 남은 연보에 대해 잉여금이냐 비자금이냐를 놓고 한창 법정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가 예산을 책정하여 쓰고 남았다면 교회 비상금 통장에 꼭꼭 숨겨 놓을 것이 아니라 복음 선교와 구제를 위해 통장을 해체해야 한다. 지금 세계 곳곳에는 돈이 없어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들과 돈이 없어 마실 물을 위한 우물을 팔 수 없어 썩은 물을 마셔 수인성 전염병에 신음하는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돈을 쌓아 둔 국내의 일부 교회들은 돈의 주인이신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알아야 한다.

일부 교회에서는 감추어 둔 돈이 몇 억이 아니라 백억, 천억이라는 숫자로 표시된다고 하니 기막힐 노릇이다. 하나님의 돈을 마치 개 교회 돈으로, 목회자의 돈으로 착각하는 듯이 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성도가 교회에 속하였다고 하여도 연보는 하나님께 한다고 한다. 그러니 우주적인 하나님께 하는 연보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써야 한다. 서구의 교회들이 선교사를 파송 할 때도 우주적인 하나님의 돈으로 선교와 구제를 했다. 성도들의 일단 교회라는 매개체에 연보를 하게 되면 그것은 성경의 계시에 따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교회는 말로는 하나님께 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빌어 연보한 사람들에게 복을 빈다. 잘못하면 재주는 성도들이 부리는데 그 돈은 하나님을 사칭한 사람들에 의해 부정직하게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문제는 신앙의 심각성이 대두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그 심각성을 모르는 성도들에게도 문제가 다분히 있다. 교회는 몇몇 지도자들이 다 알아서 하겠지 하는 무관심이 문제다. 성도들의 교회참여와 주인 의식을 살려야 한다. 교회는 목회자와 장로 몇 분이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전 성도들이 교회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 특히 교회의 년 예산의 적절한 편성과 사용에 대한 감시감독이다. 지도자들은 성직의 권위만 내 세우지 말고 실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춤이 필요하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담임/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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