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서영 목사
11월 20일 추수감사절이다. 한국교회는 저마다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감사의 날을 맞이하고 있다. 나라가 어수선해 예년의 기분을 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수확의 결실에 대한 감사의 마음만은 변함없다.

그런데 여전히 추수감사절은 한국교회만의 연례행사처럼 느껴진다. 감사의 마음은 큰데, 나눔은 별로 없어 보인다. 말 그대로 교회만의 리그가 된 것 같다. 모두가 함께하는 추수감사절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때로는 감사의 의미마저도 퇴색된 느낌이 든다. 자의든 타의든 성도들이 가져다가 놓은 계절 과일을 올려놓고, 감사 기도와 설교를 하는 수순만 밟는다. 이렇게 해서는 진정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되살릴 수 없다.

감사절은 교회와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지역사회의 주민들에게 쌀을 전달하거나, 교인들이 드린 첫 곡식과 열매를 소외된 이웃들에게 전달, 훈훈한 정을 나눠야 한다. 여유가 된다면 감사절의 헌금 전액을 소년소녀가장 및 독거노인 돕기에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감사를 단지 하는 수준에서 뛰어 넘어 감사의 의미를 나누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추수감사절의 헌금을 건축비 등으로 충당하고, 교회마다 부채를 갚는데 쓴다면 감사의 의미는 곧 퇴색되고 만다.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축제의 장이 되어야할 추수감사절이 부담의 현장으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 이는 1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소득과 소출에 대한 감사의 축제가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추수감사절을 모두가 즐기는 축제, 모두가 행복한 날로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사절을 대하는 한국교회의 태도부터 달라져야 한다.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추수감사절 헌금으로 교회의 성장을 위해 쓰겠다는 마음가짐부터 버려야 한다. 오히려 감사의 헌금을 더욱 소외된 이웃을 위해 나누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성장가도를 달리면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종교의 색깔을 가장 먼저 잃어버렸다. 가난한 자들의 든든한 동반자로서의 종교성을 포기한 채 오히려 부자들의 종교로 변질된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한국교회는 단추를 잘못 끼웠다. 결국 이제는 한국교회의 생명마저 걱정해야 하는 위기에 몰린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교회는 나눔과 섬김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권력의 중심에 서있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가장 낮은 자의 심정으로 임해야 할 목회자가 가장 높은 곳에서 군림하고, 가장 낮은 소외된 이웃들을 핍박하는 모습이다.

이번 추수감사절이 이러한 한국교회의 병폐를 뿌리 뽑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된다. 가뜩이나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한국교회가 대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누겠다는 의지를 내비쳐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한국교회가 이 땅의 희망이라는 것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올해 추수감사절은 한국교회도, 한국사회도, 가난한 자도, 병든 자도 모두가 풍성한 날로 기억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국교회가 서길 간절히 소망한다.

예장합동개혁 총회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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