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나라의 위신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때, 우리를 모두를 부끄럽게 하는 기사가 눈에 있었다. 지난 11월 8일자 조선일보 사회면. 굵은 쇠줄로 묶고, 비밀번호 자물쇠로 봉인한 007가방처럼 보이는 사진이 실렸다. 미국대학입학자격시험(ACT) 문제집이 든 가방이다. 세계 130여 개국에서 치르는 문제집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에 보내는 것만 그렇게 했다는데, 한국에서 수시로 시험문제가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랬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그동안 전국 26곳에서 치르던 시험장을 모두 폐쇄하고 한 곳에서만 치르기로 했다고 한다.
미국 본사는 “한국에서 일부 부도덕한 사람들의 범죄 행위(criminal action)가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의 노력을 헛되게 하도록 더 이상 놔두지 않겠다”면서, “본사 감독관 입회하에 한 장소에서만 시험을 보게 해 ACT시험의 보안과 형평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을 사실상 ‘시험 부정행위 국가’로 낙인찍은 것인데,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의 노력을 헛되게 하도록 더 이상 놔두지 않”는 일을 한국 정부가 아닌 미국 민간단체가 나섰다는 게 서글프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일보는 다음날 [만물상]에 ‘속임수 왕국’이라는 제목으로 좀 더 상세한 기사를 올렸다. 지난 6월 미국 대입자격시험 문제가 사전 유출되자 당일 한국 내 시험이 전격 취소됐다. 2013년에는 경찰이 문제 유출 수사에 나섰고, 2007년엔 태국에서 시험 본 후 한국에 문제를 넘겨주는 ‘시간차 커닝’이 적발되기도 했다. 그로 인해 한국 학생 900명의 성적이 취소됐다. 로이터 통신은 “한국은 시험 부정행위자들 때문에 악명이 높아지고 있다”는 기사를 보내기도 했다. [만물상]은 “커닝 왕국 오명 뒤엔 내 자식만 잘되면 상관없다는 비뚤어진 부모가 있다”고 평했다. 한 학원 강사는 “문제만 빼주면 사례비는 얼마든지 주겠다는 학부모도 있다”고 했다. 그런 학원은 한 달 학원비가 1000만원이 훨씬 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엄히 묻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 자녀들이 세계 앞에 기를 펴고 살기 위해서라도 최고 권력자의 헌법유린 행위에 대해 엄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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