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용 화 목사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복된 성탄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내리신 구원의 선물인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을 전후로, 온 천하에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아기 예수가 탄생한 뜻 깊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지구촌 곳곳에서는 여전히 아픔과 슬픔, 고통이 가득하다. 가뜩이나 매서운 한파에 몸과 마음이 꽁꽁 얼어붙을 지경인데, 세계 도처에서 자행되고 있는 기아와 질병, 테러와 전쟁, 반인륜적 범죄, 경제적 불평등 등은 희망의 메시지와는 사뭇 다르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이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욕망으로 가득하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우리 인간이 이렇게 슬픔과 아픔, 고통에 처한 것을 결코 원하시지 않는 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탄절은 의미가 크다. 우리들이 그동안 저지른 과오들을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면서 온전하게 거듭나기 위한 첫발을 내딛을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금의 성탄절은 무늬만 갖췄을 뿐 본질이 너무 훼손당한 것 같다. 길거리에는 예수님을 전깃줄로 칭칭 동여매어 버렸고, 오색찬란한 네온사인은 성탄절을 지상최대의 상업물로 전락시켜버렸다. 이들은 성탄절을 하루 쉴 수 있는 공휴일쯤으로 여기고, 어떻게 하면 특수를 노릴까만 혈안이 되어 있다. 말 그대로 예수님의 탄생이 한낱 가진 자들의 놀이문화로 전락하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우리 이웃들의 절규를 막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도 한국교회가 이를 교정할 입장을 내놓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교회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재물과 권력에 무게중심을 둔 결과이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바른 소리를 내야 함에도, 작금의 시대는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다. 누가 누구를 향해 바로 잡으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성탄절이 온전히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사람들이 콧방귀를 껴도 아랑곳하지 않고, 본질을 외쳐야 한다. 그것이 주의 몸된 교회로서 사명이자 책무이다.

아울러 성탄절에는 모두가 행복한 날이 되기를 소망한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누구보다 섬김의 본을 보였던 예수님처럼, 이 땅에 가진 자들이 자신의 것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아 소외되고 가난한 우리 이웃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건네야 한다. 자신이 많이 가졌다고 뽐내지 말고, 오히려 겸손하게 이웃을 섬기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물론 그 선봉에는 한국교회가 서야 한다. 솔직히 초기 한국교회는 사회적으로 존경의 대상이자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 땅의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한 든든한 동반자였으며, 진정 사랑의 종교였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는 그나마 책정해 놓은 이웃사랑을 위한 예산마저 깎는 실정에 있다. 대신에 교회 부흥과 성장에 ‘올인’하는 모습이다. 누가 한국교회를 사랑의 종교라고 하겠는가.

보여주기식 나눔이 아니다.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독교적 구제와 봉사, 헌신으로 이웃사랑에 힘써야 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모든 것을 내놓아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올해 성탄절은 한국교회만의 기념일 아닌,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복된 성탄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천안성문교회 담임·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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