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북풍설한이 몰려오는 겨울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 외롭게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독거노인들의 겨울은 한마디로 외로움으로 가득하다. 이들은 추운겨울을 보다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이웃들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자신에게 사랑을 베풀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들여오지만, 자신을 향한 따뜻한 사랑은 되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속에 오셨는데, 그리고 이들 속에서 역사하셨는데. 자신들에게 사랑을 전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간간히 공공기관과 사회단체에서 가져다가 주는 사랑의 선물에 위로를 받는다.

이들은 오늘도 우리사회에서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들에게는 희망도, 소망도 없다. 하루를 무사히 보내면 되는 소박한 꿈만 있다. 사랑을 그렇게 많이 강조하는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단체들은 자신들에게 희망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이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한다. 가난이 죄인가(?) 회개할 것이 무엇이 그렇게 많아서 회개하라고 하는가(?) 도무지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오히려 종교는 자신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주는 꼴이 되었다.

매년 이맘때 한국교회의 연합단체를 비롯한 교단, 기타 사회기관에서는 ‘사랑의 연탄나누기’, ‘사랑의 김장 나누기’, ‘사랑의 빵 나누기’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나눔 행사가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고통의 삶의 현장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관심이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또한 이 나눔은 연말연시에 집중돼 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일상과 같다. 누구도 찾지를 않는다.

이들에게는 사랑을 가져다가 주는 사람이 바로 예수이며, 진정한 이웃이다. 오히려 이들은 예수님이 누구냐고 묻는다. 이 물음에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를 대신해서 돌아가신 분”,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분”, “배고픔을 해결해 주실 분” 등등의 말로 위로한다. 추상적이며, 감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의 말은 춥고, 배고프고, 덮을 것이 없는 이들의 귀에 천국이니, 회개니 하는 말들이 들어 올리 만무다.

전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평상시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던 정치지도자, 교회의 목회자, 가면을 쓴 그리스도인, 경제인들을 향해 하는 말이다. 이들은 연말연시가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자신들의 거짓 홍보를 위해 열을 올리고, 진심으로 봉사하는 여러 자원봉사자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그렇다 진정한 봉사와 사랑실천은 왼손이 한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며, 교훈이다.

드러내는 봉사는 기득권자들의 배를 채우기 위한 이미지 마케팅일 뿐. 봉사의 뒤에는 가식적인 웃음과 카메라로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마케팅이 있다는 사실이다. 연말의 신문기사를 보라. 소외된 이웃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거짓웃음과 연탄을 나르는 모습, 김장을 담그며 포즈를 취하는 모습은 이젠 너무 역겹다. 이들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연탄을 나르는 행동보다는 보일러를 바꿔 환경을 개선해주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 이제라도 소외된 이웃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하겠다. 엄동설한 추운 겨울에 외로이 눈물 흘리고 있는 소외된 이웃이 없는지 사방을 둘러보아야 한다.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 이웃을 향한 사랑과 봉사는 연말뿐만 아니라, 1년 내내 그들은 가슴으로 향해 있어야 한다. 그들은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시기를 고대하고 있다.

특히 교회는 소외된 이웃들이 따뜻한 겨울이 될 수 있도록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선물해야한다. 따뜻한 겨울이 될 수 있도록 배려와 관심을 보여야한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가. 예수님은 말구유 오셔, 이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셨다는 사실을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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