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성서는 인류에게 닥친 재앙의 원인을 인간의 죄악에 두고 있다. 죄악의 깊이가 얼마나 깊던지 하나님께서 “그것(피조물)을 지었음을 한탄”하실 정도이다(창 6:5). 신이, 그가 지은 피조물로 인해 아픔을 겪는다는 것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신관이다. 하나님의 고통에 대한 신학적 결론은 1)하나님의 창조 행위가 사랑에 의해 이뤄지고 있음이요, 2)인간의 죄악에 대한 심판 역시 그 동기가 ‘분노’ 때문이 아닌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아 홍수 시에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창 6:5)했다는 것은 그 시대의 구조, 시스템이 온통 거짓에 의해 구축되었다는 것이다. ‘거짓의 사회화’이다. 속고 속이는 기만이 판치고, 흉악한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세계이다.

인간 세계의 파멸은 밖에서 오지 않고 안에서 온다. 나라의 파멸도 밖에서 오지 않고 안에서 온다. 우리가 거짓을 버린다는 것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 의롭다함을 증명하려는 죄를 회개하고, 거룩하신 분의 인정 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인간의 자기 증명은 동료 인간에 대한 적개심으로 나타나고, 배척으로 나타나고, 살인으로 나타난다. 가인은 자기 의로움을 증명하기 위해 동생 아벨을 죽였다. 유대인들은 죄 없으신 예수를 죽였다. 로마 제국은 죄 없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했다. 하나님께서 왜 그토록 우상숭배를 금하시고, 왜 그토록 위선을 책망하시는가를 알 것 같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그 시로부터 스스로 자기를 옳음으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입만 열면 거짓을 일삼게 되어 있다. 인간은 자신의 옳음을 위해 발버둥 칠수록 지금 박근혜와 그 일당에게서 보는 것처럼, 거짓, 기만, 뻔뻔함, 구역질나는 인간이 되어 간다. 그러면 그럴수록 하나님의 탄식은 깊어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하리로다”(롬 7:24-25). 우리도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탄식하시는 것은 심판의 날이 멀지 않은 증거이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탄식이 더 깊어지지 않도록 회개해야 한다. 저마다 하나님께서 탄식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서 자기 옳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죄악으로부터 속히 떠나야 한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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