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예수께서 광야로 나가신 것은 세례 요한의 처형 소식을 듣고서이다. 난폭한 힘이 지배하는 시대, 사방이 어둠이어서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절망적인 시대에 광야로 나가신 것이다. 그리고 광야 40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시험을 받았다는 것은 장차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단하는 일이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비 콕스에 의하면 예수의 시험받으심은 그가 지도자로 나서기 위한 결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첫 번째 돌들로 빵을 만든다는 시험은,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능력, 권세에 대한 갈망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정치인들의 공약에서 늘 그런 모습을 본다. 그들은 우리를 잘살게 하겠다고 한다. 자기는 그런 능력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우리 또한 그럴 능력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좋아한다. 두 번째 시험은 자기 공로를 인정받으려는 욕망과 관련된다. 열광하는 군중들 위로 떠받들어지기를 바라는 열망이다. ‘747시대’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지도자는 그렇게 선택해서 선택됐다.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것도 없었다. 세 번째 시험은 지도자로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자포자기하고 사탄에게 무릎 꿇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께서 받은 시험은 모두 힘의 남용과 관련이 있다.

옳은 일을 하는 데는 그만한 고통이 따른다. 고뇌가 따른다. 예수의 선택으로 인해 가장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은 아마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자매들이었을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자식이 군에 가는 것만으로도 어머니들은 눈물을 흘린다. 일제 식민지시대 독립운동에 나선 자식이나 남편이 있었다면 그들의 어머니나 아내는 근심으로 밤잠을 잘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도 어떤 일에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대부분이 ‘후회 없는 결단’을 하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선택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선택은 있을 수 없다. 사도 바울은 콧노래를 부르며 선교하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했다. 우리가 아는 복음의 승리는 모두가 희생을 통해 성취한 것들이다. 옳은 일에 희생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자기희생 없는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아니다.

삼일교회 담임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