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종묘공원 주차장으로 가는 계단 한켠에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다. 이 곳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길위에교회(박운철 목사)가 주관하고 있다. 길위에교회는 매주 수요일과 주일 오후 2시에 이 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한파가 몰아 닥쳐 수은주가 영하권으로 뚝 떨어졌지만 길위에교회 박운철 목사와 어르신들은 추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찬양을 부르고 기도를 드리며 말씀과 은혜 속에서 예배를 끝마쳤다.

길위에교회 박운철 목사는 늦깍이 목사다. 1988년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장비 관련 사업 등 다른 사업을 하며 살아왔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소명이 끝내 그를 목회자의 길로 인도했다. 사업을 하던 때에는 주일성수가 어려워 늘상 마음에 걸렸고, 협심증으로 갑자기 몸에 이상까지 찾아오자 자연스럽게 신학교를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고. 결국 그는 다시 신학을 시작해 2009년에 졸업하고 본격적인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 박 목사는 남들처럼 큰 교회에서 사역하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연히 종묘 공원에 들렀다가 어르신들을 위한 사역을 하고 있는 양현모 목사를 알게 됐고 노숙인과 어르신을 섬기는 모습에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지속적으로 양 목사님을 도와 사역을 도왔다. 그러다 몇몇 동역자들과 함께 영등포 노숙인들을 위한 사역에 본격 뛰어들었다.

“2010년 1월 1일, 영등포공원에 첫 사역을 갔었지. 그해 눈이 많이 왔어. 발목 이상 빠질 정도로. 첫 예배드리는 그날에 그 넓은 영등포공원에 할머니 한 분이 계신 거야. 실망을 해서 그래도 예배를 드려야겠기에 그 분을 모시고 예배를 드리려는데 자꾸 귀찮게 하지 말고 가라고 하더라고. 그래도 꿋꿋이 예배를 드렸어. 이 분도 마지못해 예배를 드리더라고. 그런데 이 분이 마음이 열린 거야. 사연을 들어보니 그날 시설에 들어가기로 돼 있는데 마음이 심란해서 공원에 나와 계셨다는 거야. 예전에 교회에 다니셨는데 지금은 다니지 않는다면서 그런데 시설에 들어가면 예수님 잘 믿고 신앙생활 잘 하겠다고 하는 거야. 어찌나 고맙고 감사한지. 그렇게 용기백배했지. 동기부여가 되고 힘이 나더라고.”

그렇게 영등포공원에서 시작된 사역은 수요일과 주일, 금요일까지 노숙인 한두 명 모이다가 100여 명까지 모이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러던 중 박 목사에게 시련이 닥쳤다. “어느 날 예배를 드리려는데 저쪽 멀리에 새카맣게 파리떼가 몰려 있는 거야. 한 노숙인이 쓰러져 있더라고. 우선은 다가가서 일으켜 세웠더니 숨을 헐떡거리고 있어. 급히 119를 불러 조치를 했는데 이 분이 구급차 타고 안 가겠다고 버티는 거야. 실랑이 끝에 119를 돌려보내고 나한테 물 한 병만 달라고 해서 기도해 주고 물 한 병 놓고 돌아서는데 마음속에 회의가 밀려들더라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집에 돌아가서도 한숨도 못 잤어. 내가 노숙인들을 위한 사역을 한다고 하면서 과연 예수님처럼 사랑을 전하고 있는지 자괴감이 들었어. 결구 ‘이 사역은 내 사역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해 그해 12월 영등포를 떠났어. 사역자들을 남겨 두고. 그리고 구로동에 교회를 개척해 동네 어르신들을 돌보고 섬기는 일을 준비했었지.”

그렇게 교회개척을 준비하던 박운철 목사에게 종묘공원에서 사역하던 양현모 목사가 급작스럽게 연락을 해 왔다. 양 목사는 종묘공원 사역을 자기 대신 맡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 박운철 목사

“노상을 떠나겠다 했는데 그렇게 양 목사님이 종묘공원 사역을 요청하니 난감하더라고. ‘보름 동안 기도해 보겠습니다’ 했는데 계속 전화가 오는 거야. 하나님께 기도 하는 중에 ‘종묘 공원에서 사역하다가 죽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던져지더라고. 망설여지더라고. 그런데 예수님을 생각하니까 주님도 결국 길 위에서 사역하셨는데 나에게 맡겨 주신다면 영광이다. ‘하나님께서 이 길로 나를 가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다시 종묘공원에서 사역을 하게 된 거지.”

그렇게 양 목사 후임으로 종묘공원 사역을 시작했지만 결코 녹록치 않았다. 혼자서 음향장비며 예배에 필요한 물품을 봉고차에 싣고 종묘공원을 누볐다. 어르신들의 텃새도 만만치 않았고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성실한 박 목사의 모습을 보고 하나둘 어르신들이 모여 들고 보이지 않게 후원하는 손길도 생겼다.

“이 사역이 어려운 것이 우선은 재정이다. 목회자사례비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자비량으로 섬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종묘공원에 오는 어르신들이 어려운 분들이 대다수라 헌금 얘기는 일체 하지 않는다. 혹여나 그 분들이 상처받고 떠나 버릴 수도 있으니까. 어르신들에게 식사나 음식을 대접하고 예배를 드리는데 필요한 물품들은 제 아내와 가족들, 지인들이 보내주는 후원으로 충당하고 있다.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고 그 분께서 감당해 주시리라 믿고 꿋꿋이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박운철 목사는 어르신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있지만, 단순히 먹을 것을 주는 일차적인 사역에 머물지 않고 있다. 박 목사는 가장 큰 본질은 복음전파라고 힘주어 말했다. 어르신들에게 당장 먹을 것을 주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이 가장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교회를 단순히 빵이나 밥을 나눠 주는 곳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박 목사의 지론이다. 박 목사는 교회의 사명은 복음전파, 영혼구원에 있다는 점을 늘 잊지 않고 꾸준하게 사역을 이어나가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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