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선인들은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했다. 고통의 바다란 말로 고통이 끝도 없이 가득한 현세를 바다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괴로움과 번민으로 가득한 인간세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고통의 바다를 파선하지 않고, 은혜로 잘 항해할 방법은 무엇일까? 고통을 이겨 낼 슬기로운 지혜 그리고 방법은 있는가.

방법 중의 하나가 즐거움은 나중에 누리기로 하고, 부딪히는 문제들에 맞서서 오늘과 지금을 절제하므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절제가 만만한 일은 아니지만 절대 할 수 없는 일도 아니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책임지는 자세와 삶은 문명세계의 근본이고, 뿌리이다. 또 사태의 본질과 진실을 대면하여 나를 정직하게 바로 세우므로 가능할 수도 있다. 비록 당황스럽고, 작은 손해를 볼 수도 있으나 고해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정직이 필수다. 그리고 불편부당함이 없이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은 사람 따라 만만치 않게 느끼고, 버거워 할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요, 복잡한 일들도 아니다. 날마다의 생활에 자연스럽게 적용함에 누구나 실천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이다. 단순하여 열 살짜리 어린이들도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나 나이가 들고, 세상을 쉽게 그리고 자기중심적으로 살려는 각질로 자기 인생을 위장함으로 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을 만들어버린다.

위로는 대통령이나 아래는 한 가정의 호주들도 이들 단순한 방법들을 실천에 옮기지를 못하여 쓰라린 좌절의 경험을 하게 되곤 한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이런 것들이 복잡하거나 어려워서가 아니라 실천할 의지가 없거나 약하기 때문이고, 집착이나 고정관념에 착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것들로 부터의 자기를 이기려면 고통을 피하려 들지를 않고, 마주하여 정면 돌파하는 적극적인 삶으로 새 길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부딪히는 문제들을 두려워하지를 않는다. 오히려 반기며(?) 나아가 문제가 생산하는 고통까지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렇게 지혜롭지도 현명하지도 못하다. 가능한 한 문제들을 피하려 하고, 고통을 피하려 든다. 때로는 시간이 약이라며 문제들을 질질 끌면서 저절로 없어지기를 바란다. 있는 문제를 없는 것처럼 여기려 든다. 심지어 고통을 잊거나 피하기 위하여 술이나 약물로 자신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이런 태도는 성숙하지 못한 태도이며, 아무것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문제와 고통을 피하려는 이런 태도가 정신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 대부분이 이런 경향성을 가졌기에 정신적으로 완전히 건강한 사람은 흔하지가 않다. 누구나 정신건강에 어느 정도는 문제가 있는 셈이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 Jung. 1875~1961. 스. 의사 심리학자)은 이르기를 “노이로제(neurosis, 神經症)란 항상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회피한 결과”라고 하였다. 그 결과는 피하려했던 그 고통보다 피하려 하는 마음이 더 고통스러워진 결과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노이로제에 이르게 한 문제와 고통을 회피하려 들지만 이는 로이로제를 더욱 악화 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정신적이고, 영적인 건강을 성취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자신과 자녀들에게 문제에 맞서서 고통을 체험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과 고통을 겪는 것이 필요하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학습하게 해야 한다. 이런 학습은 삶에 부딪히는 문제와 고통이 성장에 이를 수 있도록 북돋워 주는 것임을 알게 해 준다. 우리들이 스스로 이런 학습을 체득하려 노력하는 태도를 가질 때에 우리는 성숙에 이르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살면서 변화와 위기를 직감할 수 있는 순간이 있는데 욕심과 본능에 이끌려 애써 그 느낌을 무시하고, 절제의 선을 넘어서는 순간, 반드시 탈이 나고, 아파하고 후회하게 한다.

고통의 긍정적인 이해는 삶의 쓴 맛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고통이 왔을 때, 그 고통을 겪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고, 새로운 희망을 갖는 것이 고통을 대하는 성숙한 자세이고 태도다.

성경은 연단과 징계로부터 오는 고통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인 결론을 가진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12:11)

고통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이 고통을 통해 자기를 의지하던 것을 내려놓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며, 주님이 얼마나 은혜로운 분이신지도 알게 된다. 이 고통스러운 인생의 풍랑에 주님이 상상치도 못했던 방법으로 역사하심을 보고, 다음 시련이 닥쳐올 때는 좀 더 강건한 자세로 무서워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여 인내하는 은혜를 누리게도 훈련된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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