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복음은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예루살렘공의회(행 15장)의 결정이 있었음에도, 사도 베드로가 위선적인 행동을 드러내는 불미스런 일이 발생한다. 안디옥교회에서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한 식탁에서 먹고 있을 때, 예루살렘에서 유대계-그리스도인들이 들어오자 베드로는 슬그머니 자리를 털고 내뺐다. 스스로 이방인과 차별을 없애는 데 앞장섰음에도, 막상 자신에게 난처한 상황이 닥치자 꽁무니를 뺀 것이다. 이 장면을 목격한 바울은 그 자리에서 베드로를 면박한다. “도대체 당신은 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방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살라고 하는 것이요!”(갈 2:14)

위선의 대가로 헤롯을 빼 놓을 수 없다. 헤롯이 세례 요한을 죽인 동기가 그 잘난 체면 즉 위선 때문이라는 게 좀체 믿어지지 않는다. 당최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인다는 생각은 꿈에도 가지지 않았음을 마가는 증언하고 있다.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받음이라”(막 6:20). 그랬던 헤롯이 체면 때문에 세례 요한을 죽이게 된다. 자기 생일 파티 자리에서다. 기분이 잔뜩 달아오른 헤롯이 자신의 의붓딸에게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맹세한 것이 화근이다.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을 인하여 거절할 수 없는지라”(막 6:26). 기막힌 일이다. 체면 때문에 세례 요한과 같은 인물을 죽이다니! 위선이 이렇게 고약하다. 이따금 목회자들이 사회적으로 비난 받는 일이 있는데, 이유는 그들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위선적인 행위 때문이다. 요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청문회 증인으로 나온 이들의 모르쇠는 위선의 극치를 보여준다.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등은 본시 그런 류의 인간이라 치고, 그래도 교육자는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유수한 대학의 총장, 학장, 교수라는 이들의 모르쇠는 민망하다 못해 참담하다.

예수께서는 어떤 분이셨는가? 오직 진실만을 말하고 사랑하신 분이다. 참된 지도자는 위선의 가면을 벗고, 체면 따위는 모양도 내지 않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위선을 버리고 자비를 구한다는 것은, 허상의 누더기를 벗고 은혜를 사모하는 것이기도 하다. 양심이 살아 있다면, 궁지에 몰렸을 때,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수록, 위선의 가면을 벗고 자비를 구할 일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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