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일 작정 기도회를 통한 실제적인 역사

제1차 1,000일 작정 기도회((1987.1.1.-1989.9.30.)
새해를 며칠 앞두고 내가 아내에게 제안을 했다. 어차피 목회를 하려면 개척을 해야 하는데 돈도 없고 배경도 없으니 개척을 위해서 내년 1월 1일부터 1,000일 작정 기도를 합시다 했더니 그러자고 했다.

결혼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아내에게 교회에서 철야기도하자고 하는데, 그것도 40일이나, 100일이 아니고, 1,000일 동안 하자는데 “예”라고 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아내와 살면서 미리 미리 준비했던 기도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절실히 깨달았다.

산 속 동굴에서 금식하면서 결혼 기도할 때, 기도제목 첫 번째가 나하고 사명이 같은 사람을 달라고 했다. 구체적인 내용인즉 내가 기도하자고 할 때 반대하지 않고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을 달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정말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같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을 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87년 1월 1일부터 구로동 동광교회에서 개척을 위한 첫 번째 1000일 작정기도가 시작되었다. 어김없이 밤12시경이 되면 둘 다 국방색 털바지를 입고 위에 옷을 두껍게 껴입고 침낭을 하나씩 들고 교회 지하 본당에서 찬송하고 기도하다가 앞 뒤 의자에서 침낭을 이불 삼아 잠을 잤다.

밤에 난로를 피울 리가 만무했다. 창문 틈새로 찬바람이 들어오고 춥기가 삼각산 동굴 속보다 훨씬 더 했다. 추운데다가 좁은 의자인지라 바로 눕지 못하고, 모서리 잠을 자는데 불편해서 하룻밤에 수없이 몸을 뒤척거렸다. 아내는 추위 때문인지, 밤마다 1층과 2층 사이에 있는 화장실을 일곱 번 여덟 번 왔다갔다했다.
몸에 무리가 가는 줄은 알았지만 오직 생명 바쳐 기도하고 개척을 준비한다는 각오 때문에 나름대로 대가를 톡톡히 지불했다.

아내가 임신을 해서 4개월쯤 되어서 제법 몸이 나고 얼굴이 좋아지더니 갑자기 배가 아파 산부인과에 갔더니 태아가 이미 잘못되었다고 했다. 이유는 산모가 너무 무리해서 뱃속에 자라던 4개월 된 남자 아이가 견디지 못하고 생명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 문제 때문에 기도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나는 충주에 있는 기도원에서 30일 동안 금식을 했고, 아내는 내가 없는 동안 혼자서 동광교회에서 밤마다 기도하며 사명을 키우고 기도를 쌓아갔다.

아내의 몸은 약해져만 갔다. 1년에도 몇 번씩 자연유산이 되었고 개척 후 1년이 지나 91년도에 첫아기를 출산할 때까지 만 5년 동안 수십 번의 자연유산이 지나갔다. 어려운 처지라 몸을 돌볼 여유도 없었지만 오직 죽으면 죽으리라 생각하고, 만 2년 9개월이 걸려서 첫 번째 1000일 작정기도가 완료되었다.

나름대로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르고 마무리한 기도였던가. 우리 하나님은 그냥 기도를 받으시는 분은 아니셨다. 수십 번 생명을 잃는 아픔을 통과하게 하셨지만 기도의 응답은 너무나 귀하고 값진 것이었다.

1000일 작정 기도를 할 동안 타교단 교회에서 교단과 교리 문제로 갈등하던 나를 기도하던 동광교회로 옮겨서 교육전도사로 일하게 해 주셨고, 또한 맡은 교육부서의 부흥을 주셨고, 여름방학 때에 금식하고 하나님이 주신 응답을 따라 누나와 같이 시골마을에 땅 182평을 사서 25평의 교회를 건축하도록 하셨고, 전도단을 만들어서 전도하게 하셨고, 작정기도가 끝나기 두어 달 전부터 하나님은 말못할 감동을 주셨다. 기도하기 위해서 무릎을 꿇으면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고, 성령께서 감동 중에 일러주셨다.

동아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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