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말마다 서울 도심은 탄핵 찬반 집회로 도시의 기능이 마비될 정도다.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촉발된 대통령 탄핵 정국이 거대한 촛불 민심으로 표출되자 이제 질세라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민심이 점점 세를 불려가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이미 두 쪽으로 갈라졌으며 헌재가 어떤 결정을 하던 한쪽은 절대 승복하지 않을 혼란이 불 보듯 뻔하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매 주말마다 세종로를 가득 메우며 국회에 이어 헌재까지 압박하자 보수단체들이 태극기를 들고 세 결집에 나섰다. 이들은 국회가 100만 촛불을 빌미로 잘못이 없는 대통령을 탄핵했고, 민주주의 근간인 ‘법치’를 훼손하고 있다며 애국정신으로 무장해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보수정부 10년간 한국의 보수세력은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하며 부패의 먹이사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포용하기는커녕 사익을 위해 국가권력을 맘대로 휘두르고 불법과 탈법도 서슴치 않았다. 그 총체적 결과물이 작금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보수정치의 핵심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지키면서 법치에 입각한 책임정치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사태는 보수가 아닌 수구의 끝판을 보는 듯하다. 이제 이 땅의 보수를 자처하는 지도자라면 자신이 진정 보수였는지, 기득권에만 집착한 수구는 아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이 땅의 내로라하는 보수지도자들은 여전히 기득권 지키기에 골몰하며 민심을 가르는데 앞장서고 있다.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보수교계 인사들이나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촛불집회를 민중주의이자 포퓰리즘으로 몰고 가면서 국회가 촛불을 빌미 삼아 법치를 유린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태극기 집회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행동인 반면에 촛불 집회에는 불순 세력이 끼어 있다며 심지어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고 선동하고 있다. 

촛불집회에 용공세력이 끼어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연인원 천만을 헤아리는 촛불민심을 용공세력으로 매도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태극기 집회 또한 순수한 자발적 애국집회라고 할 수 있는지 먼저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적으로 대답해야 할 것이다.

작금의 국정 농단사태는 최순실에 의해 박근혜 대통령이 놀아난 사건이 아니다. 설령 대통령이 비선실세에게 철저히 농락당했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의 엄숙하고 무거운 짐을 벗을 수는 없다. 대통령이 아무리 억울한들 대통령에게 철저히 배신당한 국민만 하겠는가.

그런데도 대통령이 여지껏 보여준 행동은 국민들 앞에 책임을 통감하고 사죄하기는커녕 그 상처를 더 헤집는 행동이었다. 특검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대국민담화에서 밝힐 때와는 180도 달라진 태도로 오로지 시간 끌기와 버티기에 돌입한 대통령과 그를 무조건 두둔하며 계엄령까지 선포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소위 이 나라 보수지도자들의 민낯이다.

보수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는 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고 했다. 지금 보수에게 중요한 것은 정권 연장도, 재집권도 아니다. ‘죽어야 산다’는 각오로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면 수구꼴통이란 오명을 뒤집어쓴 채 민심이 떠나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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