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근 열 목사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은 한마디로 나눔과 섬김을 통한 사랑실천운동이다. 이 운동은 소외된 인간, 단절된 인간관계, 깨어진 공동체를 치유하는 운동이다. 가난의 현실을 넘어 창조자 하나님, 사랑하는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운동이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더불어 공동체적 삶을 살면서, 부자들에게 가난한 사람들과 나눌 것을 촉구했다.

예수님은 부자들이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때,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예수운동은 수탈과 지배의 현실을 거부하고, 서로 나눔으로써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참된 화해를 이루고, 가난을 극복하려고 했다.

예수님께서 말하고자 하는 나눔과 섬김은 무엇인가. 나눔은 우선 가난한 자들끼리의 나눔이다. 부자들보다는 가난한 자들이 훨씬 잘 나누고, 정이 넘친다. “과부는 과부가 사정을 더 잘 안다”는 우리속담이 있듯이. 가난한 사람의 사정은 가난한 사람이 더 잘 안다.

부자들의 담은 더 높고, 부자들의 빗장이 더 무겁다. 가난한 자들의 마음과 삶이 더 열려 있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다는 속담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나누는 삶은 자연스럽게 체질화되어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목숨처럼 소중한 것이다. 남는 것이 있음에도 굶는 사람을 외면하는 것은 일종의 살인 행위임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열차를 타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고속열차 안에서는 네것과 내것이 분명하다. 서로 주고받는 인정이 없다. 그러나 통일열차에서는 내것, 네것을 별로 가리지 않는다. 김밥과 계란을 혼자 먹는 일이 드물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목적지까지 간다. 한마디로 통일열차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있다.

성서에서 말하는 나눔은 가난한 자들끼리의 나눔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준 정당한 몫을 찾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이 투쟁을 통해 가난한 자들과 부자들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의해 주어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섬김은 우선 타인을 위한 삶을 뜻한다. 섬김에는 투쟁적인 요소가 있다. 섬김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섬김을 가로막는 것들과의 투쟁이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섬김은 그들의 삶속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들의 멍에를 깨고 그들의 사슬을 끊는 것이다. 이런 섬김을 저지하는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우는 것이 섬김의 행위이다.

오늘도 이것은 가난한 자들에게서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나고 있다. 이들의 몸부림과 절규는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창조 의도와 창조 목적을 실현하는 일과 통한다. 가진 것 없는 그들만이 소유의 삶을 나눌 수 있으며, 그런 나눔을 갈망한다. 물론 그들도 나누기 위해서는 개인주의적인 삶을 극복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예수운동이 그랬듯이 그들끼리만 나눔으로 그치지 않고, 그들이 빼앗긴 것, 지금 빼앗기고 있는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부자들과 그들을 비호하고 있는 권력층에 요구해야 한다. 이들이 정당한 권리 주장을 억압하는 사회체제는 변혁되어야 하며, 가난한 자들에 대한 부자들의 폭력을 제압할 수 있도록 가난한 자들의 힘이 성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깨어나야 한다. 새로운 힘은 좌절과 체념으로부터 벗어나 서로 아픔을 함께 나누는데서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위해 함께 투쟁하는데서 생겨난다.

그 현실의 질곡을 깨뜨리고 생명과 힘의 원천인 하나님에게 가까이 갈수록 가난한 자들의 생명과 힘은 풍부해지고 강해진다. 이런 힘의 성장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실현되어 간다. 하나님나라는 미래에 있지만, 나눔과 섬김의 삶이 이루어지는데서, 불의한 체제를 부수려고 몸부림치는데서, 하나님나라는 실현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군남반석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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