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영국 성공회 신부이며,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인 존 스토트. 그는 기독교는 ‘귀의 종교’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서로에게 경청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단지 듣는 것만이 아닌 ‘이중 귀 기울임’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쪽의 말과 저 쪽의 말을 함께 들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의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 사이에 놓여 있으므로 반드시 둘 다에 귀를 기울일 책임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요하심을 더 많이 발견하려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요하심 중 어떤 것이 가장 필요하며, 그것을 어떻게 가장 적합하게 제시할 수 있을지 분별할 수 있도록 세상에 귀 기울여야 한다.”(존 스토트,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스토트는 복음 전도에 헌신하도록 부름 받은 이들에게 ‘이중 귀 기울임’을 역설했지만, 나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오늘의 안보 현실이야말로 ‘이중 귀 기울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오늘의 남과 북은 한 번 터지면 모두가 초토화 돼버릴 무기를 가득 싣고 마주 달리는 열차와 다를 바 없다. 그것도 재래식 무기가 아닌 최첨단 무기이다. 이처럼 가공할 무기를 싣고 마주 달리면서 서로를 향해 위협하는 말을 던지고 있을 뿐, 대화의 통로가 없는 것은 여간 불행할 일이 아니다. 참혹했던 2차 세계대전도 이런 식으로 하지는 않았다. 참으로 바보짓이 아닐 수 없다. 북은 핵 개발로 위협하고, 남은 그런 북을 멸절의 기회로 삼을 것이라며 미국이 가진 가공할 전략자산들을 이 좁아터진 한반도에 집결시키는 데만 열중이다. 북에 맞서 우리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놀라운 것은 남과 북은 이처럼 극도로 대립하면서도 서로 마주 앉아 상대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북은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 역시 북한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미국의 북한 제재에만 동승해서 국가 안보를 담보 받으려 한다. 북한의 핵 개발 못지않게 두려운 것은 북한과의 대화가 용인되지 우리의 현실이다. 지금이야말로 파국을 모면하고 평화정착을 위해 ‘이중 귀 기울임’이 필요하다. 우리 자신과 미국의 말만이 아닌 북한과 주변 나라들의 말도 들어야 한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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