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이들은 농민혁명가 토마스 뮌쩌 이후에, 독일 뮌스터에서 벌어진 재세례파의 극렬한 무정부주의 난동에 대해서 엄중하게 대처하면서, 비합법적이라고 비판했다. 칼빈이 1539년에 펴낸 로마서 주석에서 설명하는 바가 가장 극명하게 종교개혁과 혁명의 차이를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실제로 모든 세상 권력이 다 폐기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없고, 사람들에게 복종을 하게 만드는 온갖 멍에를 벗어버리지 않으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누릴 수 없다고 믿는 그런 광신적인 신념에 사로잡힌 자들도 있었다.

종교개혁은 “신학적인 개혁”을 핵심 과제로 삼아서, 성경의 가르침을 회복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어거스틴에게 영향을 받은 기독교 신학자들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사람들이었고, 특히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 시대에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서도 첫 번째 선두주자로 앞장을 섰던 인물이 루터이고, 그가 끼친 영향은 세계 역사 속에 두루 미치게 된다.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루터 연구에 일생을 바친 마틴 마티 박사는 신앙에 관련된 95개 조항을 오백년 전에 루터가 내걸었던 날부터 역사가 바뀌었다고 진단한다. 정치적 혁명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변화가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종교개혁은 목회자로 교회를 섬기던 신학자, 설교자의 “목양적 관심” 혹은 “목회적 배려”가 근본적인 출발의 동기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 신학이 변질시켜버린 잘못된 관행과 관습에서 벗어나서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인도함을 받게 하려는 질문들을 품고 해결하려던 몸부림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개혁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신앙양심과 고백적인 내용들을 가져야만 하는가를 고심했고, 공감을 얻으면서 확산되어 나갔다.

루터는 종교개혁의 선두주자로서 누구보다도 먼저 험한 길을 앞장서서 헤쳐 나갔다. 1518년 10월, 루터는 소속 종단의 최고 지도자 카예탄 추기경에게 “아니오”(Nein!)라고 불복종을 선언했다. 그리고 다시 보름스의회에 나가서 황제 앞에서도 순응을 거부했고, 자신의 저술들을 철회하지 않았다. 왜곡된 통치권을 주장하는 세속정권에 대해서도 불복종을 주장했다. 루터에 의해서 중세 말기 혼돈에 처해있던 기독교는 전혀 없었던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었다.

어떻게 인구 2천명이 살던 독일 북부 조그만 성읍도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학교수가 주장한 것들이 세계 기독교를 새롭게 세우는 계기가 되었는가를 재점검 해보자. 지난 오백 년간 무너지지 않고 살아있는 교훈은 성경적 신앙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의 신념 속에서 성경에 따르려는 신학적인 가르침에서 특성들을 찾아야만 그들의 개혁사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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