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5.18을 제외하고 이토록 저주스러운 상황을 경험하지 못했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이라 불리는 이 부끄러운 사태와 책임에서 아무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인데, 수갑을 찬 이들 조차 피해자라고 소리치는 이 기막힌 현실에서, 촛불과 태극기 집회 참가들이 서로를 향하여 퍼붓는 저주는 거의 끝을 보자는 수준이다. 헌재가 최종 심리를 마친 지금, 이 모든 사태를 정리할 마지막 책임과 권한을 지닌 헌재 재판관들을 향한 위협은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국가적 중대한 위기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헌정 중단을 가져올 수 있는 치명적인 현상이다.

법치국가에서 헌법의 가치는, 그리고 그 헌법의 가치를 수호해야 하는 헌법재판소의 권능은, 그 헌법재판소의 권능을 구현할 재판관들의 양심은 그 어떠한 것으로부터 위협받아서도 안된다. 그 위협은 법치국가에 대한 도전이요, 옛 왕조로 말하면 반역이요 그 무리를 역적이라 부른다. 법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상식적인 문구를 떠나서, 아무리 정치적인 이유가 있고, 주장의 정당성이 성립한다고 할지라도 헌재의 최종 결정은 법치 국가에서는 최종적인 권위를 갖는 것이기에 대해서 승복해야 하며, 그 이전에 누구도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 결정을 책임질 재판관들을 강제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촛불과 태극기로 대치하고 있는 양자 모두 헌재 앞에 모여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애교로 볼 정도이다. 재판관들에게 근접 경호가 붙은 것도 볼썽사나운데, 심지어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집 주소를 공개하고 단골 미용실과 수퍼까지 언급했다는 보도는 등골을 오싹하게 할 정도의 전율을 느끼게 만들었다. 역사의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이런 위협과 협박이 성공하여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이후의 역사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역사는 정직하다. 노무현 탄핵결의에 성공하고 웃으며 그 일을 자축하던 당시 한나라당은 그 다음 총선에서 대패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역사의 정직성 때문이다.

그 정직한 역사의 대한 경외심과 사필귀정의 원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억지로 현재의 역사를 왜곡하고 비틀어 미래의 역사를 자신들의 의지대로 이끌어 가려고 하면, 비록 당대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시간은 언제나 역사와 진실의 편이었고, 그 힘은 민심에 의해 새로운 방향, 아니 원래 역사가 흘러가야 했던 방향으로 정향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보았고, 우리는 그것을 역사의 교훈이라고 했다. 이처럼 정직하고 준엄한 역사의 교훈이 엄연함에도 여전히 현재를 왜곡하여 미래의 역사를 조작하려는 세력들의 법치 도전은 필연적으로 강한 역풍을 맞아 소멸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 탄핵의 찬반과 옳고 그름에 대한 모든 논쟁은 최소한 지금 우리나라의 법치 현실에서는 이미 종결되었다. 특검은 그 역할을 다하고 검찰로 그 수사를 넘겼고, 대통령 탄핵 여부에 관한 최종 판단은 헌재의 마지막 책무로 남아있다. 그동안 촛불과 태극기로 구분된 대규모 시위도 그 역할을 다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모든 국민이 해야 할 일은 적어도 삼권분립하에서 대통령과 대법원장과 국회가 추천한 이들로 구성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법적 양심과 소신을 믿고 차분하고 진지하게 그들의 결정을 기다리는 일이다. 그것이 역사의 정직성에 합당한 처신이다.

이 정직한 역사 앞에서 헌재 재판관들은 정말 큰 양심적 부담과 정치적 부담과 현실적인 신변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판결하고 그것에 대해 위엄을 지켜 줄 것을 부탁한다. 비록 그 결정으로 위해를 당한다고 할지라도 역사가 그들의 결정을 존중해 줄 것이고, 이 땅의 정직한 민심이 그 위해자들을 처벌할 것이다. 반대로 이런 것들에 굴복하여 비굴한 판결을 하게 된다면 그는 양심과 역사앞에 죄인이 될 것이고, 민심이 법과 법관들을 버릴 것이다. 비록 약소국이요 주권을 빼앗긴 나라의 민족대표 33인이 일제의 위협을 무릅쓰고 민족의 역사와 양심 앞에서 세계를 향해 당당했던 그 모습을 떠올리며, 8인의 헌법재판관들의 떨리는 손으로 서명한 판결이 역사 앞에서 칭송받을 수 있도록 법과 양심 앞에 소신있게 서 줄 것을 당부하고 당부하는 바이다.

그리스도대학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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