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사기>는 ‘한문제’를 칭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문제(文帝)는 즉위한 뒤 23년 동안 궁궐의 원림(園林)과 수레, 말, 의복이나 장식품을 늘리지 않았다. 신민(臣民)들에게 불편한 점이 있으면 나라의 재정을 털어서 베풀었고 백성들의 복지를 도모했다. 남월 왕 ‘조타’가 스스로 황제가 되자, 문제(文帝)는 조타의 형제들을 모두 불러서 각기 후사(厚賜)하고 덕으로 감화하였다. ‘조타’가 이에 크게 감동해서 황제를 버리고 신하로 칭하였다.

문제(文帝)와 흉노는 일찍이 형제의 약속이 있었지만, 흉노가 약속을 깨고 침입하였다. 문제(文帝)는 대장을 파견하여 변방의 관문을 지키도록 하였는데, 흉노의 오지에 깊이 들어가서 백성들을 해칠까봐 지키기만 하고 공격하지 않았다. 동남쪽 연해 지역에 분봉된 오왕은 문제(文帝)와 화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려 하지 않았다. 문제(文帝)는 이를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을 파견하여 지팡이를 오왕에게 하사하였으며, 또 오왕에게 조정에 나오라는 칙지(勅旨)를 내리는 방법으로 그를 연금하라고 권했지만, 문제(文帝)는 겉으로만 그들의 의견을 듣는 척했을 뿐 실제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낭중령 장무는 일찍이 오왕에게 뇌물을 받은 적이 있는데, 문제(文帝)는 이를 발견하고도 죄를 다스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상을 내림으로써 스스로 참회하도록 하였다.

무릇 이러한 사례들은 ‘한문제’가 한결같이 덕으로써 사람을 감화시키려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나라에 부(富)가 넘치면서 번영하는 현상이 나타났으니, 이는 모두 예의(禮義)의 문화로 나라를 부흥시킨 결과이다.

또 ‘한문제’가 결재한 안건은 수백 건에 달했으나 형벌을 매우 적게 사용하였으니, 정말로 인덕을 갖춘 임금이라고 할 수 있다.

주나라는 시대와 진나라는 정책과 법규가 엄밀하고 준엄했기 때문에 망했습니다. 준엄하고 엄밀했지만 간신들과 내란은 끊이지 않고 나왔던 것이죠.

한나라가 세워진 후에야 번거롭고 각박한 법령과 형벌을 없애서 백성들과 함께 휴식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제(文帝) 때에 이르러서는 공경하고 근검 하는 방침을 증거 하였습니다. 경제(景帝)는 선배들의 노선을 지켜서 5, 60년 사이에 풍속과 습관을 바꿈으로써 백성들의 기풍을 순후하게 만들었습니다. 주나라를 말하려면 반드시 성왕과 강왕을 말해야 하며, 한나라를 말하려면 반드시 문제(文帝)와 경제(景帝)를 말해야 하니, 정말로 아름답도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왕도입니다!(출처 : 조유 지음. 장순용 옮김. 반경. 동아일보사 2003. pp150-152)

작금에 우리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하여 조기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따라서 국민들의 시선이 어떠한 대통령이 선출 될 것인가에 쏠리게 되었다. 이에 온갖 권모술수(權謀術數), 유언비어(流言蜚語), 가짜뉴스 등이 난무하여, 국민들의 판단을 어렵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할 때일수록 애국애족(愛國愛族)하는 대통령이 선출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필자는 “애족(愛族)없는 애국(愛國)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피력한바 있다. 질곡(桎梏)의 역사의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우리는 악(惡)으로 선(善)을 짓밟아버린 경우에도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통곡을 했던 세월들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과다한 욕망(慾望)을 버리지 못하고 이념(理念)을 조장해 악용(惡用)하려는 이들 때문일까? 불안하기도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도 이념논쟁(理念논쟁)으로 정치나 목회 등을 하려는 태도는 종지부(終止符)를 찍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에 충실함으로 덕치(德治)가 강수같이 흐르기를 갈망(渴望)해 본다. (20)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0-21)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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