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광복 76주년을 맞았다. 민족해방 76년을 맞은 오늘도 대한민국은 해방을 둘러싸고, 분단을 둘러싸고, 정부수립을 둘러싸고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것은 우리민족 스스로 해방을 쟁취하지 못하고, 이웃 강대국의 도움으로 해방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또 남북한 민족이 하나되지 못하고, 76년 동안 남과 북이 분열돼 적대적 관계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1945년 광복을 반쪽짜리 광복이라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이웃나라의 도움으로 해방된 대한민국은 해방 당시부터 지금까지 진실공방을 벌여왔고, 지금도 벌이고 있다. 해방 당시부터
우리는 한국교회 초기 많은 선교사들 중 잊지 못하는 헐버트 선교사가 있다. 그는 피압박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선교사 중 하나였다. 한민족의 해방과 광복을 진정으로 바랬다. 많은 선교사들이 일본제국주의 권력 앞에 굴복 할 때 허버트 선교사만은 한민족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양화진 선교사묘역 제일 앞자리에 큰 비석과 함께 헐버트 선교사의 묘역이 있다. 장로교공의회 소속 선교사 대부분은 일제하에서 교회와 국가의 상호불간섭이라는 취지문을 전국교회에 배포했다. 이것은 결국 기독교인들의 독립운동과 의식화를 봉쇄하는 결과를
양심에 의해 교회의 문제, 연합단체의 문제, 교단의 문제, 이단의 문제가 해결된 시대는 역사적으로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악이 존재하며, 모든 일을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문제를 풀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사이 교회의 분규는 해결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신앙공동체는 해체되고 있다. 그래서 교인들은 성직자들을 향해 교회를 먼저 생각하는 양심을 강조한다. 교회지도자들은 목회자라면, 교회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 마르크스와 프로이드는 기성사회의 가치관에 의해 강요된 양심의 가책에서의 해방의 중요성을 강
7월 법의 달이다. 양심이 마비되어가고 있는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의 법정’이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에 대해서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양심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모두가 원리주의에 갇혀 이성과 합리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성과 합리성에서 이탈했다. 그리스도인들은 관념과 근본주의에 사로잡혀 교회의 역사를 왜곡하며, 반 평화적인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관념을 내세워 지역감정도 부추긴다. 이로 인해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모범이 되기는커녕, 세상이 교회를 걱정해야
일본은 참 나쁜 나라이다. 대한민국이 하는 일에 대해 사사건건 반대한다. 남북한 민족의 화해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행진도, 무조건 반대하고 나선다. 분명 일본은 정직하지 못한 나라이다. 대한민국을 36년간 지배하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가. 젊은 청년들을 끌고가 강제노역을 시켰고, 젊은 여성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끌고가 시궁창보다도
6월은 보훈의 달이다. 어느 시인은 6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6월25일이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6.25 한국전쟁은 이 땅의 젊은이들이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수많은 전쟁고아가 발생해, 일부는 해외로 입양됐고, 일부는 고아원과 같은 시설에서 보내야만 했다. 1천만명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국가는 6.25 한국전쟁 당시
5월 가정의 달, 세상의 온갖 짐을 혼자지고 살아온 아버지. 가정의 달 가족들에게 어머니는 있어도, 아버지는 없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만큼 가정에서 아버지의 존재가 매우 미약하다는 것을 말한다. 아버지는 나무를 하고, 밭을 갈아 먹을 것을 생산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진다. 산업사회를 이끌면서 온갖 고난을 당했어도 아버지의 존재는 없다. 아버지의 고난과 가
하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 계명을 실천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될까(?) 세상 사람들은 묻고 있다. 그렇다고 세상 사람들이라고 해서 부모를 공경하며, 아름다운 가족공동체를 만들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급속하게 변하고 있는 가족제도, 물질의 풍요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서 어르신들에 대한 ‘효의 사상’이 실
프랑스의 패션 디 자이너이며, 사업가이고, 샤넬의 설립자인 코코 샤넬(1883~1971)은 “20대에 당신의 은 자연이 준 것이지만, 50대의 당신의 은 스스로 가치(價値)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성경 마태복음 5장 11-12절에는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 슬러 모든 악(惡)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지난 7일 연합뉴스는 아사히신문에 보도된 이라는 반성의 글을 실었다. 아사히신문은 사설 ‘일본의 정의를 묻고 또 묻는다’에서 조선인 태평양전쟁 B‧C급 전범중 마지막 생존자인 김학래 옹의 별세소식을 전했다. 그러면서 “살아 있는 동안에 구제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고 실종된 일본정부의 양심과 정의
분열과 갈등이 만연된 한국교회는 사람의 힘으로 절대 하나될 수 없다. 하나님만이 분열과 갈등을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한국교회는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 안에서 하나되라고 교육했다. 교회가 하나되는 것은 십자가의 고난만큼이나 어렵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며, 그리스도에게 복종해야 한다. 2021년 부활의 아침에 한국교
3.1만세운동 102주년을 맞아 한국기독교의 역사적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에 대해 한국교회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 한국개신교는 서양의 거대문화와 자본주의 문화, 그리고 다윗문화에 매몰된 나머지 호화로운 교회당을 건축하고,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형태로는 한국교회가 역사의 흐름을 감지 할 수 없다.3.1운동의 주체
3.1만세운동은 한 세기를 지나 2년을 맞았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천왕을 섬기는 일본은 하나님의 공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일본의 경제보복과 ‘코로나19’로 인해 곤궁한 삶을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나라에 대한 희망의 한줄기 빛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3.1만세운동이 피압박 민족에게 새로운 세상, 새로운 나라, 하나님나라에
“누구나 거의 다 역경을 견디어 낼 수는 있다. 하지만 한 인간의 됨됨이를 정말 시험해 보려거든 그에게 권력을 줘 보라” -에이브러햄 링컨-BC 4세기,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의 디오니시오스라 왕과 부하 다모클라스의 이야기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것을 교훈하고 있다. 다모클라스와 백성들은 디오니시오스라 왕에
사람끼리는 절대로 하나 되지 못한다. 오늘 한국교회가 다툼과 분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성령 없이 사람끼리 하나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성령 안에서 하나 되라고 교육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지 않고서는 나의 존재는 없다.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며 살아야 한다. 헌데 모두가 내안에 갇혀 자신을 섬기며,
목회자와 교인들은 하나님의 령, ’성령‘을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성령을 교회의 복 방망이로 생각한다. 성령은 부흥사와 교회성장론자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렸다. 교회성장에 골몰하는 일부교회는 이웃교회의 교인을 데려오는 대가로 교인들의 이름 아래 과거 공산주의자들이 하던 별을 달아주기도 한다. 한창 교회성장론이 교회 간에 경쟁적으로 일어났을 때는, 이웃교회의 교
70년대와 80년대 초 교회를 찾았던 노동자들은 천주교회를 거쳐 불교를 찾았다가 여기서마저 외면당했다. 이들이 종교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 이유이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있어야 할 종교는 인간에 의해 인간의 행복을 저버리게 만들었다. 예수님은 항상 소외된 자, 버림받은 자, 잃어버린 자를 찾아 나섰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아흔 아홉 마리의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 생각이 다르고, 성격이 서로 다른 사람들, 지위와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사귀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 모두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 안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합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헌데 오늘 한국교회는 교파주의에 매몰돼 분열과 갈등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다.이는 결국 자기 안에 갇히는 결과를
제법 쌀쌀한 날씨로 마음을 움추리게 하는 11월을 맞았다. 게다가 경기마저 최악의 상태로 바닥을 보여 살림살이에 주부들의 마음은 얼어붙고, 정치는 늘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암울한 시대 속에서 우리는 갈바를 몰라 황량한 광야를 헤메고 있다. 이런 암흑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밝은 미래를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시편28편7절)오늘 대한민국의 세태를 바라보면, 삶의 의욕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처참하고 참담하다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법조계 등 어느 한 곳도 온전한 데가 없다. 정부는 국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