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불트만의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 -성서비평의 빛에서 바라본 신약성서』(역자 이동영)가 한국에도 출간됐다.『예수 그리스도와 신화 -성서비평의 빛에서 바라본 신약성서는 20세기 신약성서신학과 해석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루돌프 불트만의 대표적인 이론인 ‘비신화화 이론’과 ‘실존주의 해석’에 대한 개념이 담긴 책이다. 1951년 10월 경 미국으로 건너가 예일대학교와 밴더빌트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 루돌프 불트만이 영어로 행한 강연을 토대로 했다.책으로 나오기 위해 강연 원고를 불트만의 제자 우르슬 리히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뒤 불
서울특별시교회총연합회 사무총장 박원영 목사(서울나들목교회)의 빙부 김광호 장로가 11일 향년 8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고인의 빈소는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1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024년 4월 13일(토) 10시, 장지는 용인 평온의숲이다. 유족으로는 아들 김홍식, 자부 박경애, 딸 김우경, 사위 박원영 목사가 있다. 부의금은 박원영 목사(카카오뱅크 3333-22-946 2280 박원영)에게 하면 된다.
4·10 총선은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준 실증적인 사례다. 2년 전 문재인 정권의 각종 실패에 등 돌린 국민이 선택한 윤석열 정부가 불과 집권 2년 만에 이런 최악의 성적표를 들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총선 전에 야당 일각에서 이와 비슷한 예측이 나왔을 때는 오히려 역풍을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집권 2년 차에 접어든 윤 정부에 국민의 마음이 떠났어도 이 정도일 거라고는 정치 전문가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과는 여당의 참패,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정부 여당으로선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발표한 범야권 200석 달
기독교정당은 매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후보를 냈지만, 3%의 벽을 뚫지 못해 번번이 국회입성이 좌절되고 말았다. 지난 10일 실시된 제22대 총선에도 비례대표 후보 20명을 냈지만, 3%의 벽을 뚫지 못해 당선인을 한명도 내지 못했다. 이는 한마디로 기독교정당을 표방한 자유통일당이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정당 관계자들이 자기 안에 갇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독교정치세력화를 위해 24년 동안 노력해온 전광훈 목사의 희생과 공로에 대해서 보수적인 한국교회와 자유우파 인사 모두가 인정하고, 그가
제22대 총선이 밤을 지새운 개표결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국민의 준엄한 선택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여전히 정책선거 보다는 네거티브 선거의 경향이 강했지만, 어찌됐든 국민들은 정부 여당의 견제를 바랐는지 거대야당이라는 표심으로 속마음을 표출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성적표를 받았든지, 자신에게 소중한 한 표를 준 국민들에게 모두 고개 숙여 고마움을 먼저 표하길 바란다. 그리고 선거 기간 가슴 속에 품었던 초심을 잃지 않고, ‘선택’ 받은 자로서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길 기대한다
온 국민의 관심 속에서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이 났다. 한 치의 양보 없는 접전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국민들의 선택에 의해 누군가는 웃고, 또 누군가는 울었다. 결과가 어찌됐든 선의의 경쟁을 펼친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승리에 도취되거나, 패배에 자책할 필요도 없다. 이제는 국민들의 선택을 겸허하게 수긍하고, 자신들에게 소중한 한 표를 선사해준 국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을 제쳐두고 오직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데 온 힘을 다해 두 발로 뛰겠다는 각오로 나서야 한다. 작금의 국민들
지난 10일 전국적으로 실시된 4.10 총선에서도, 전광훈 목사가 이끈 자유통일당은 비례대표 20명의 후보를 냈지만, 3%의 벽을 뚫지 못해 기독교정치세력화가 또 무산됐다. 기독교정당의 이름으로 비례대표 후보를 낸 것이 이번이 5번째이다. 자유통일당은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기독교입국론, 한미동맹 강화 등 4대 이념을 내세워 기독교정치세력화를 시도했다. 처음 사랑실천당으로 출발한 자유통일당은 동성애 반대, 저출산 문제, 이혼율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 정당으로 기독교정치세력화를 시도, 5차례에 걸쳐 비례대표와 특정지역에
부활의 계절, 생명의 계절, 세상은 온통 생명을 움트기에 바쁘다. 세상은 푸른 옷을 입기 시작했다. 푸른 들판은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창조적 선물이다. 인정은 안정을 찾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그런데 인간은 탐욕과 정욕에 길들여져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자신과 가족이 독차지하기에 바쁘다.그래서 예수님은 가던길을 멈추고 돌아서라고 했다. 허망한 욕심과 정욕의 길, 눈이 어두움을 쫓아가던 길에서 돌아서하는 것이다. 구조 악 속에서 자기 안일에 빠져 사는 사람은 파멸에 이르고 만다. 사회도, 정치도, 경제도, 파국에 이른다. 그리
생활 속에서 인간관계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인간관계가 좋으냐에 따라서 그 사람을 평가한다. 사실 인간은 혼자 살고록 창조되지 않았다. 너와 나, 그리고 그가 함께 살아가도록 창조됐다. 모두가 내 이웃이며, 함께 살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다. 성경 요한삼서 1장15절에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각 친구 명하에 문안하라"고 기록되어 있다.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로버트 월딩어 교수는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하는지 알기 위해 75년간 남성 724명의 인생을 추적해 연구해 연구했다. 연구 결과
조선시대 후기 순조 14년(1814)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저술한 해양생물학, 수산학 서적에 홍어는 “기운을 더해주고 해독하는 효능이 있다”고 했다. 출애굽기 16장4절에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 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 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 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가오릿과에 속하는 바다 생선으로 삭히는 과정에 나는 암모니아 냄새로 좋아하는 사람과 좋
인간은 누구나 혼자 살수 없다. 무인도에서 혼자 산다고 생각해 보라. 그렇다 인간 모두의 세상살이는 나의 마음을 열어 너와 그와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 오늘 세계는 전쟁과 기아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직면해 있고, 많은 사람이 고난과 고통을 당하고 있다. 성경은 문명하게 말한다.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나의 아픔과 고통으로 받아드리지 않으면, 고인물과 같이 썩는다고 했다.그렇다 물은 흘러야 한다. 성령도 물과 같이 흘러야 한다. 나의 마음에서 너와 그의 마음으로 흘러야 썩지 않는다. 내가 받은 은혜를 혼자의
시편 14와 시편 53은 형식과 내용이 거의 똑같이 반복된다. 장르를 단언하기 어렵지만 지혜와 애가의 혼합시로 이해할 수 있다. 네 차례 언급된 신명이 야웨와 하나님으로 다르고, 형식적으로 7절과 6절로 차이가 난다. 세부적으로 보면 5절에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신다’와 ‘하나님이 그들의 뼈를 흩으셨도다’로 다르다. 한편 은 히브리어 본문보다 특히 3절 내용이 더 많고 훨씬 구체적이다. 아래 두 본문을 비교해보라.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다 빚을 지고
3. “사이버 교회”의 문제점들 2000년대로 넘어서자, 초고속 인터넷 망으로 연결된 정보교환이 가능해졌다. 가히 인터넷 기술의 대혁명이 일어났다. 이러한 초고속 인터넷 접속기술은 원래 미국 군부대에서 작전용으로 사용하던 것이 그 시초가 되었다. 그 후 이메일 교환 기술이 확산되었고, 전자 상거래와 주식 투자의 수단이 되었고, 이제는 모든 분야의 상업 활동에 이용되면서, 디지털 혁명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세계 모든 사람들의 상거래가 웹사이트와 스마트 폰에서 가능하다. 완전히 경제활동의 패턴이 달라졌고, 가정에서의 삶이 바뀌
성경의 구조를 아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 있어 아주 중요하다. 그 이유는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기 때문이다.구약성경의 창세기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뜻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미 하나님께서는 말세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는 것을 창세 전부터 나타내셨다고 이사야 선지자와 베드로 사도는 기록하고 있다.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사건을 이미 태초에서부터 기록하였다는 것은 성경의 구조가 바로 하나님의 마지막 때로 초점이 맞추어져 기록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그러므로 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든지 갈등이 있다. 나와 상반되는 방향이다. 그것이 때로는 나를 긍정적으로 이끄는 자극제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나를 방해하거나 지배한다. 어느 야산에서 튼튼하게 자라고 있던 소나무를 칡넝쿨이 꽁꽁 휘감아, 마침내 소나무는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해 죽은 상태로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군과 적군과의 갈등의 끝은 하나가 죽어야 한다. 그러나 둘 다 살려면 적절한 시기에 서로 협의하여 휴전하는 것이다. 휴전을 통하여 서로 소모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이다. 스마트 휴대전화기의 배터리 수명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교회 집사가 여관을 인수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여관을 운영할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목사님,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였다.하나님은 이미 그에게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집사는 “그렇게 하라”는 말씀만 답으로 정해놓고 기도하고 있으니 응답을 못 받았다고 말했던 것이다.우리도 사실 통상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기도한다. 내가 바라는 것, 내가 기도 응답이라고 여기는 것을 이미 다 정해 놓았
‘한국교회가 불량품 같다.’고 말한 기자가 있었다.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세인들에게 그 같은 소리를 들을만한 일들이 그 동안 우리 교회 안에 있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어쩌다 우리 한국교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여러 사유가 있겠지만 우리 교회가 신자에게 하나님의 뜻과 섭리하심을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했기 때문일 것으로 여긴다. 그 동안 우리 한국교회는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가르쳐왔다. 예수 믿어 복 받는다는 가르침이 잘못된 교훈일 수 없다. 사실 예수 믿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과연 무엇이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못 한다”는 말이 있다. 이러하듯 미소는 사람들의 마음을 잃을 수 있고, 그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또한 미소는 마음의 얼굴이라고도 한다. 헌데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 모두는 생활에 지치고, 현대 물질문명에 갇혀 미소를 잃어버리고 생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마디로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을 마음이다. 아무리 얼굴이 못생기고, 무섭게 생겼더라도, 미소를 머금은 얼굴을 보면, 그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고, 그 모습은 아름답다.성경 욥기 8장 21절에 "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깐 요기를 하고 가자고 하시고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알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고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하여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땐 주로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 보아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숫가락 국물을 떠 먹였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
기독교 신앙의 확산은 먼저 믿고 영혼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복음 전도와 선교로 이루어진다. 이는 기독교 진리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구원의 확신을 몸과 영과 혼으로 전하는 복음의 전이 현상을 통해 일어나 부흥과 성장을 이루었다. 교회가 설립될 초대교회 시대에는 복음을 전파하는 초기 그리스도인은 신앙과 믿음을 생명처럼 아끼고 혹 고난과 죽음이라는 장애물이 나타날지라도 순교라는 결단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게 했다. 그래서 초기 교회 지도자들이나 신자들의 신앙은 성경에 계시 된 “29또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