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은 법의 달이다. 법이 있기 때문에 국민들은 질서를 지키고, 그릇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법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고 말한다. 때문에 법은 모든 국민에게 통용되고, 적용된다. 또한 법을 어기면 응분의 대가를 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헌데 국민에 의해서 만들어진 범이 통하지 않는 곳이 한군데 있다. 바로 한국교회이다.때문에 한국교회에서 쉬지 않고
1984년 이후 개신교인 1천만명이 교회를 떠났다는 통계가 있다. 28년동안 한국교회의 교인 1천만명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종교을 갖지 않은 사람이 교인이 되었고, 불교 등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분명한 것은 개신교의 교인들이 계속해서 줄고 있다는 것이며, 다수의 지식인들과 의식을 가진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통
일본 우익인사들의 역사왜곡 망언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기보다 정당화하는 파렴치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신들의 침략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위안부문제조차 스리슬쩍 빠져나가려는 거짓수를 쓰고 있다. 참으로 인간의 탈을 쓰고, 금수의 짓을 저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수교 50년을 맞았다. 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한일
피비린내 나는 민족상잔의 비극.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5년이 됐다.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겨눠야했던 아픈 상처가 여전하다. 하지만 지난 과거보다 더욱 아픈 것은 작금의 시대에도 여전히 분열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누구보다 아픔을 감싸주고, 화합의 연고를 발라줘야 할 한국교회마저 분열에 편승해 가는 모습이 심히 보기가 좋지 않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첫 환자가 나온 이후 6일 만에 감염자가 25명으로 늘어나면서, 나라 전체는 메르스 공포에 휩 쌓였다. 사망자 2명도 나왔다. 처음 대한민국의 보건당국은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발표했지만, 3차 감염자가 나오면서 메르스의 공포는 전 국민에게 확산되고 있다.그것은 메르스 환자와 같은 병실을 사용한 사람과 가족들이, 메르스 환자로 판명났
‘신은 죽지 않았다’는 영화가 전국 개봉극장에서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다. 이 영화는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이 이야기는 독실한 기독교인인 대학생 조쉬 휘튼(쉐인 하퍼)과 무신론자 철학 교수 제프리 래디슨(케빈 소보)이 불꽃 튀는 논쟁을 통해 신을 증명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철학교수는 “쓸데없는 얘기로 시간낭비 하지 말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의 계절 5월도 반 이상이 지나갔다.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이것은 분명한 변화이다. 그리고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하찮은 피조물들도 새로운 변화와 삶을 지적했음에도, 하나님의 형상 그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변화될 줄을 모른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반하는 행동을
한국교회 안에는 목사다운 목사, 아름다운 목사는 없는가(?) 또 교회다운 교회가 없는가(?)교인들은 묻고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목사들이 가진 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교회가 지니고 있던 맑은 정신을 세속에 빼앗겨, 교회의 정체성을 살실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2년전 타계한 ‘법정스님의 의자’는 국민 모두에게 감명을 주고도
지난 25일 네팔 수도 카트만드에서 일어난 대지진. 카트만드 시내는 대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로 인해 말 그대로 참담했다. 여기에다 사망자 4000명을 넘어 도시는 죽음의 도시로 변해버렸다. 또한 카트만드는 죽은 자의 무덤으로 되었다. 사망자가 1만명을 넘을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집과 가족을 잃고 거리로 나온 카트만드 시민들은 하늘을 원
1년 전 이맘때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잊을 래야 잊을 수 없는 참담한 사건이었다. 그것도 생명의 계절인 봄의 문턱 4월에 일어났다. 세월호 참사는 분명 돈에 미친 사람들의 욕심과 탐욕이 불러온 사건이었다. 한마디로 무게의 중심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일어난 사건이다.사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대부분은 돈 때문에, 그리고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리면서
그리스도인 모두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것을 대망하며, 열심히 일하며 신앙생활를 하며 산다. 그리고 이 안식을 미리 맛보며, 영원한 생명의 안식에 잇대어 산다. 분명한 것은 모든 피조물은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휴식을 가져야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성서를 통해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일이 없는 휴식은 죽음이다. 휴식 없는 일은
성서는 위축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생명의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가 주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안식을 가로막는 모든 인간들과 모든 정치, 종교체제에 대해서 저항하고, 안식일이 이들을 위해서 있다고 선포하셨다.예수님 당시, 안식일 법은 율법주의자들에 의해 율법적인 강제규범이 돼, 고달픈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중 하나가 성서의 ‘복음’의 회복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목회자는 “성서의 복음이 무엇이다”고 명쾌하게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성서의 복음’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을 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이것은 설교의 내용 대부분를 사회, 경제, 윤리사상에 중점을 둔 나머지, 성서의
“저는 한때 길을 잃고 방황했었으나, 이젠 올바른 길을 발견 했습니다/한때는 눈이 먼 존재였지만, 이제는 광명을 볼 수 있습니다/내 가슴에 두려움을 가르쳐 주신 것은 주님의 은총이었고/주님의 은총은 저의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셨습니다/주님의 은총은 제 앞에 나타났고, 그 은혜는 얼마나 소중한지요!/그 시간에 처음으로 믿음을 가졌습니다/내가 이미 겪어온 많은
기독교계가 다른 종교에 비교해서 봉사활동에 많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한 여론조사의 조사 결과 밝혀졌다. 이 여론조사에 의하면, 기독교 41,3%, 천주교 32,1%, 불교 6,8% 순으로 나타났다. 봉사는 글자 그대로 대가 없이 자신의 달란트를 활용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타 종교에 비해 봉사활동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기독교에 대한 봉사활동의 신
1919년 3월 1일 우리는 그날을 기억해야한다. 2015년은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 한국선교 130년이 되는 해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는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 어떠한 억압과 고문을 당하며 살았는지. 또한 그러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행동을 보였는지를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일제강점기 시절
그동안 한국교회는 성장제일주의에 집착한 나머지 굴절된 과거사를 정리하고 다듬을 여유도 없이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러다 보니 한 번도 제대로 지난 과거의 잘못된 역사에 대해 반성할 기회조차 없었다. 또한 과거의 잘못된 역사에 대해 청산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교회가 바로서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된 역사에 대해 반성하고, 바로잡는
지난 7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 편에서는 홍혜선 전도사의 거짓예언과 그 거짓예언을 통해 피해를 본 사람들의 일상을 낱낱이 파헤쳤다. 이 방송은 국민들 중 홍 전도사의 거짓예언을 믿고, 가정을 버리고 미국, 태국, 캄보디아, 필리핀 등으로 가족을 등지고 피난을 떠난 피난민들의 삶을 담았다. 또 그들을 떠나게 한 한국사회의 불신
70-80년대 한국교회는 기도원 및 수양관을 조성한다는 이름아래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마구 파헤치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법과 탈법을 자행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건축한다’는 논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산과 물이 좋은 곳은 여지없이 기도원과 수양관이 들어섰으며, 이로 인해 한국교회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한국교회 안에는 맑은 정신을 소유한 목사다운 목사가 그 어느 때보다도 그립다. 한국교회의 교인들과 국민들은 최근 일어난 목회자의 ‘음주난동’, 영적 이름 아래 교인 성폭행, 교회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갈등과 분쟁 등의 보면서, 목사다운 목사를 그리워하고 있다. 이같은 우려는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가진 것이 너무 많아 ‘욕심이 죄’를 낳고 있는 것과 무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