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계절이 돌아왔다. 2025년 성탄의 계절을 기다리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는 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을 입에 달고 살아간다. 열심히 기도도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한 만큼, 말한 만큼, 행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한마디로 행동하지 않으면서, 말만 앞세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진심은 멀리 돌아가서도 결국은 상대의 마음에 닿는다. 나의 작은 선의는 누군가의 하루의 삶을 바꾸고, 그 마음은 시간이 흘러서 다시금 나에게로 돌아온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동일시하며, 이들의 삶의 현장에서 이들의 언어로 복음을 선포하고, 이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 운동을 벌였다.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은 예수님의 삶의 현장이었다.
한국교회는 예수님께서 자신과 동일시했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등지고 2025년 성탄을 맞이할 수 없다. 한국교회는 돌아오는 성탄절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부, 물 건너 산 넘어 소식을 전해주는 우체부, 사회와 가정에서 밀려난 노숙자, 대를 이어 가난에 시달리는 영세민, 도심에서 쫓겨난 철거민 등을 위해서 기도하고, 기도한 만큼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우리는 이들을 등지고서는 교회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진심으로 이들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교회가 새로운 세상, 미래로 나갈 수 있다. 오늘 한국교회가 교인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이러다가 멀지 않아 현재 교회의 30%가 문을 닫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온다.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는 한국교회가 예수님께서 자신과 동일시했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등진 결과이다.
사실 한국교회는 이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 운동을 벌였을 때 크게 성장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부자가 됐다. 하지만 한국교회 역시 유럽교회와 마찬가지로 이들을 등지면서 마이너스 성장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목회자들은 교회 강당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기도하자고 외치는데, 외치는 자나 받아들이는 자나 모두가 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서는 매우 인색하다. 그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참사랑(복음=기쁜소식)을 잃어버린 결과이다.
그래서 한국교회 교인들은 나에게서 너와 그에게로 성령이 흐르지를 않는다. 고인물과 같이 썩어가고 있다. 모두가 돌로 만든 떡을 먹고 마음이 강팍해져 가고 있다. 나의 마음을 열어 너를 받아들인 줄을 모른다. 그렇다 보니 교회는 냉랭해져 가고,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만들어 예수님이 자신과 동일시했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업신여긴다. 분명히 성경은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라”고 했다. 그리고 함께 나누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경제정의이다. 찬송가 218장 가사 내용과 같이 우리는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고 노래를 부르지 않는가. 인도의 비폭력 운동가 마하트마 간디는 “진심은 꾸밈없는 태도 속에서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다"고 했다. 그렇다. 그리스도인들은 꾸밈없이 네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다가오는 성탄절을 아름답게 보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성탄절을 기다릴 수 있다. 성탄절을 기다리면서 진심을 교훈하는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예레미야 3장 10절)는 성경 말씀을 묵상한다.
굿-패밀리 대표•개신대 상담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