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성길 목사

시인 울리히 샤퍼는 <하루밖에 살 수 없다면>이라는 시에서 ‘하루는 한 생애의 축소판’이라고 했다.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뜨면 또 하나의 생이 시작된다. 피곤한 몸을 뉘어 잠자리에 들면 하나의 생이 끝난다. 하루의 일정을 생각하면, 많은 것이 생각난다. 그것은 울리히 샤프의 말대로 하루는 한 생애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일 하루살이처럼 하루만 살 수 있다면, 오늘 ‘하루’는 나의 ‘일생’이다. 내가 살아온 지난들을 생각해 보면, 이 하루 속에 모두 담겨져 있다. 아침 하루를 시작하면서, 많은 것을 설계한다. 이 설계대로 내가 살았는가를 한번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하루가 인생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설계한대로 살지를 못했다. 많은 시행착오도 겪었다. 좋은 일도 있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도 있었다. 우리의 생이 그렇다. 좋은 때도 있었고, 마음에 들지 않은 때도 있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합당한 삶을 살았는가를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모두가 이 물음에 자신있게 대답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필자인 나부터도 이 물음에 대해서는 부끄럽다. 하루살이처럼 오늘을 살자고 인생 모토를 정해본다.

하루밖에 살 수 없다면 부드럽게 미소 짓겠다.

하루밖에 살 수 없다면 친절하게 웃겠다.

하루밖에 살 수 없다면 미움보다 사랑을 품이겠다.

하루밖에 살 수 없다면 나를 위한 즐거운 일을 생각하겠다.

 이 모토를 정해 놓고 보니 정말 괜찮은 모토라고 생각이 든다. 특히 목사인 필자는 목사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같은 모토를 정했다. 하루를 의미있게 보내고, 목사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부드럽게 미소 짓고, 친절하게 웃어야 한다. 또 미움보다 사랑을 품어야 하고, 나를 위해 즐거운 일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하루살이처럼 하루밖에 살 수 없다면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을 소중하게, 오늘 먹을 음식을 고맙게, 오늘만 살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고 용서하고 싶다. 오늘 아침 이 모토가 실현되기를 소망해 본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이 모토를 함께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새새움교회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