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생명의 역사시작됐다

생명의 계절, 부활의 계절이 시작됐다. 생명은 생명을 낳고 생명에 응답한다. 계엄과 탄핵에 휩싸인 대한민국은 좌우로 갈라져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에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끊긴지 오래됐다. 입학생이 없어 문을 닫는 학교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2024131일 기준으로 전국의 폐교 수가 3,955곳이라는 집계가 있다. 인구절벽,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은 미래로 나갈 수 없다.

이런 상태로 가다가는 대한민국이 소멸될 것이라는 우려하는 생명학자들도 있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국민 모두가 저출산에 대한 위기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생명은 생명을 낳고 생명에 응답하지 못한 결과이다. 그래도 생명을 실어 나르는 젊은이들의 결혼하는 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다 정부와 지자체들도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고 있는 것은 매우 희망적이다.

생명은 생명을 낳고 생명에 응답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이다. 이런 성경적 교훈을 망각한 대한민국은 인구감소로 소멸되는 농촌지역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소멸위기에 처한 지자체는 인구 유입을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저출산 해결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정책에 끝나버리기 일쑤다. 좀처럼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생명은 생명을 낳고 생명에 응답한다는 성경의 진리를 망각한 결과이다. 인간들은 사람을 사랑하지 못해 짐승을 사랑한다.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전염병은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비롯한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 버마의 내전 등은 많은 피조물들을 살해했고,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2/3를 차지하는 남반부 국가의 국민들은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며, 굶어죽는 하나님의 백성의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이들도 우리와 함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야 할 이웃이며, 이 땅에서 기대어 살아야 할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버림받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이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예수님의 인류를 향한 사랑은 어리석은 사랑, 아가페였다. 인간은 혼자만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참사랑에 균열이 생겼다. 예수님의 평화(샬롬)도 깨졌다.

한국기독교가 고난당하는 이웃을 외면하는 등 십자가의 정신을 잃어버려, 타락한 중세교회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기독교가 고난당하는 이웃을 외면하는 등 십자가의 정신을 잃어버려, 타락한 중세교회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십자가는 모든 사람을 위한 고난의 상징, 사랑의 표징
팍스 외치는 한국교회
생명의 역사에 참여할 수 없다

복음(기쁜소식)과 샬롬이 사라진 시대

복음(하나님의 참사랑=기쁜소식)도 사라졌다. 오늘 세계는 예수님의 샬롬을 외치지 않는다. 대신 힘에 의한 평화, 로마 팍스, 아메리카 팍스, 차이나 팍스, 러시아 팍스를 외친다.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치는 인류는 하나님의 생명에 응답할 수 없다.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한국교회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자유와 민주라는 이름아래 분열과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교회는 극우화 돼, 국민을 갈라치기 하는데 현안이 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제 교회는 극우를 찬양하는 그들만의 교회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하나님의 참사랑과 예수님의 샬롬을 위해서 일하는 교회는 것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교인 간에 샬롬으로 인사하고 화답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는 시작됐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탐욕과 소유욕, 지배욕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지 않는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충성한다. 오늘 정치권과 한국교회를 보면, 이는 극명해진다.

오늘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 하나님의 참사랑에 참여하기는커녕, 자유와 민주라는 이름아래 보잘 것 없는 백성들을 거리로 내 몬다. 인간 모두가 복음은 상실되고, 생명에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자기 안에 갇혀 혼자만 살겠다고 아우성친다. 우리는 굶주린 자, 매일매일 양식을 걱정해야 하는 자, 소음과 유독성 화학물질로 인해 몸이 병들어 가고 있는 자, 환경파괴로 아사직전에 있는 가난한 나라의 백성, 전쟁으로 인해 고난당하는 민족들을 돌볼 때,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에 참여할 수 있다.

이들의 고통과 고난을 나의 고통과 고난으로 받아드리지 않고서는 생명의 맛을 볼 수 없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현할 수도 없다. 인간은 서로 기대어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 그렇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수 년 동안 신종바이러스감염증과 자연재해, 전쟁과 기아로 인해 수 백 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민간인들의 희생은 참담하리만큼 컸고, 멈출 줄을 모른다. 인간 모두가 누려야 할 하나님의 참사랑과 평화에 위협을 받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에 참여하자

언론에 보도되는 사건들은 한마디로 양심·윤리·인권·인격 같은 말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돈을 벌수만 있다면, 너를 죽이는 세상이 됐다. 쾌락을 누릴 수 있다면, 윤리 따위를 하찮게 여긴다. 계엄과 탄핵의 정국서 정치인과 목회자들의 말과 행동에서 양심과 윤리, 인격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모두가 자신과 가족,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 한사람을 위해서 국민을 갈라치기 하며, 이념논쟁에 휩싸이게 한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꿈도 꿀 수 없는 편법을 동원해서 바벨탑을 쌓는다. 오늘날 세상은 고추장, 된장, 쌀을 훔치는 세상이 아니다. 도박비용·라이트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웃을 살해하는 세상이다. 돈 때문에 부모를 살해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자기 안일과 쾌락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이다.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내가 편해지기 위해서 예사로이 사람을 죽이는 사회가 됐다는 얘기다.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한 음란하고 추악한 세상이 됐다. 모두가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자신이 독차지하고 있다. 자신을 하나님으로 삼는다.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한 우상숭배자가 되었다. 이단사이비를 경계해야 할 교회마저도 사이비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데 참담하다.

중대형교회 들은 떠난 교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이웃 교회 교인을 빼앗아 빈자리를 채우는 형국이다. 교인들을 빼앗긴 작은 교회는 하늘을 향해 소리친다. 자신의 아성을 쌓는 교회는 이단보다도 못한 교회이며, 이 교회의 목사는 사이비 교주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단보다도 사이비가 더 무섭다고 말한다. 이는 모두가 자신과 가족,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만을 위해서만 봉사한 결과이다.

고 조경대 목사는 교인을 빼앗은 교회와 교회를 빼앗아가는 교단을 향해 소말리아 해적과 같다고 했다. 최삼경 목사는 개신교의 교주는 갈수록 늘어나고, 그 수가 얼마인지 헤아릴 수가 없다고 했다. 모두가 자신을 찬양하며, 숭배하는 것에 고무되어 있다는 것을 지적한 말이다. 교주화 되어가는 한국교회는 한마디로 이웃종교, 이웃교회를 비난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나님의 참사랑, 복음을 상실한 공룡교회는 작은 교회를 집어 삼키는 세태가 되었다.

노쇠화된 교회 20년 후를 걱정하라

갈수록 문을 닫는 교회가 늘어나고 있다. 교인 수도 반토막 났다고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다. 모두가 자신과 가족,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만을 위해서 맘몬과 바벨탑을 쌓기에 바쁘다. 이렇듯 우리는 한사람의 웃음을 위해 1만명이 눈물과 피 그리고 땀을 흘려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 독재자 한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북한을 비난하기에 바쁘다.

그렇다 오늘 일부 한국교회는 목회자 한사람을 위해서 교인 모두가 희생해야 하는 신앙공동체가 됐다. 이것은 일부교회가 사이비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목회자들은 교인들에게 미래의 꿈을 심어주지 못하고,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자신의 아성을 쌓는다. 십자가는 더 이상 세상의 빛이 아니다. 국민들에게 거추장스러운 장식물이 되어 버렸다. 믿음의 척도는 신앙이 아니라, 헌금의 액수가 됐다.

한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많은 교회가 희생해야 하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이다. 그렇다보니 교인들과 국민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희망도 없다. 교인들은 새로운 세상, 하나님나라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어찌 보면 가난한 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이 희망 없는 교회를 떠나 신천지를 비롯한 이웃종교로 옮겨가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한국교회 목회자 수천 명이 신천지와 말씀교류에 참여하고 있다는 얘기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일부 교단의 지도자가 신천지와 노골적으로 만나고, 교류한다는 얘기도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에 참여할 수 없다.

한국교회는 70-80년대 성장에 심취돼 미래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교인들에게 미래에 대한 꿈, 하나님나라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자신의 아성을 쌓는데 모든 시간을 허비한다. 오늘 도시의 중대형교회 대부분은 농어촌교회의 희생 속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을 잊었다. 도시교회는 농촌교회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이 잘나고 능력 있어서 교회가 성장했다고 착각한다.

이런 상태로는 부활의 계절에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에 참여 할 수 없다. 자기만을 생각하고, 남을 생각하지 않는 이 세상은 지옥보다도 더한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오늘 한국교회가 노쇠화 되고, 그런대로 지탱하는 것은 국민 삶의 질이 높아지고, 수명이 20년 연장되었기 때문이다. 교회도 앞으로 20년 동안 그런대로 지탱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 이유이다.

인간 모두 가인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교회도 유럽 교회의 전철을 밟아 교회당이 이웃종교로 넘어가거나, 술집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이다. 웅장하고 텅 빈 유럽교회는 관광객들의 관광명소가 된지 오래다. 간간히 살아남은 교회는 노인들의 쉼터가 됐다. 이는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결과가 아니겠는가(?) 분명 하나님의 참사랑을 상실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분열하고 갈등하고. 전쟁과 기아로 고난당하는 사람을 그대로 두고서 한국교회, 아니 세계교회의 미래는 없다.

교인들에게 하나님나라의 비전도 심어줄 수 없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잃어버린 이 세상 인간 모두는 죄 없는 자가 없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 모두는 죄인이다. 범죄에 대하여 나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는가. 매일매일 보도되는 추악한 범죄들은 이 세대를 지배하고 있는 구조악의 결과이다. 인간 모두가 지배욕과 소유욕, 쾌락으로 인해 가인이 되어 가고 있다.

하나님은 네 동생 아벨(이웃)이 어디에 있느냐고 우리에게 묻고 계시다. 모든 인류는 죄 아래 있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범죄는 우리 모두가 공범자이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 좀 더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 쾌락을 누리기 위해서 이웃을 살해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인간은 허망한 것 때문에 눈이 멀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귀에 쇠말뚝을 박아 이웃의 아우성 소리를 듣지 못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다. 예수님의 발자국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모두가 허망한 꿈을 꾸며, 이성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서 양심, 윤리, 체면 따위를 찾아볼 수 없다. 분별력도 없다. 결국 인간들은 돌로 만든 떡을 먹고 마음이 굳어져 생명의 맛을 잃어버렸다. 생명의 맛을 잃어버린 인간은 생명의 역사에 참여 할 수 없다. 하나님의 기쁨도, 평안도 맛 볼 수 없다. 사랑도 주고받을 수 없다. 이들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에 대해서 모른다.

예수 안의 진리 예수 안에서 배운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에베소서 417-19)

이 말씀대로 이 시대는 모두가 분별력을 잃어버렸다. 판단력이 흐려져 옳고 그름을 전혀 모른다. 저기 안에 갇혀 자기주장만을 내세우기에 바쁘다. 자신을 신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며, 방탕한 생활을 하고, 더러운 일들을 서슴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잃어버렸다. 그렇다보니 교인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회개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성범죄 가해자가 피해자를 고통에 빠트린다. 교단의 교주는 예수가 모든 이를 용서했으니, 너도 성폭력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한다. 교주화된 한국교회를 예수님의 가르침을 악용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예수 안에서 배웠다. 그러나 모두가 예수 안의 진리를 망각하고, 내 멋대로 살아가기에 바쁘다. 오히려 예수님의 진리를 자신의 탐욕을 위해 악용한다.

한마디로 이웃에게 상처 주는 일을 서슴없이 행한다. 탄핵과 계엄의 정국서 극우화된 한국교회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제라도 우리는 낡은 인간성, 곧 정욕에 속아 썩어져가는 인간성을 버려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하나님나라에 참여할 수 없다. 마음의 영이 새로워지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로운 인간성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미래로 나갈 수 없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했다.

옛 인간은 증오의 인간이었다면, 예수님은 사랑의 인간을 소유한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인간에게 행동으로 교육하셨다. 예수님은 사랑 받을 가치가 없는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욕심쟁이들에 의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셨다. 십자가는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한 고난의 상징이며, 사랑의 표징이다. 이런 십자가를 금으로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는 인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고난을 모르고, 자신을 위해서 충성하는 자이다.

예수님, “나는 너를 위해 너를 사랑한다

원수까지 사랑하셨다. 갈릴지브란은 자신의 저서 <인간의 아들 예수>에서,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너를 사랑하지만, 나는 너를 위해 너를 사랑하다고 했다. 그렇다 너를 위해 너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이시다. 몸으로 실천하며, 교육한 것이 사랑이다. 이 사랑만이 인간을 새롭게 할 수 있다. 사랑만이 인간 내면에 깊이 쌓인 증오를 몰아낼 수 있다. 나의 어설픈 사랑으로는 증오를 몰아낼 수 없다.

우리는 이 부활의 계절, 생명의 계절에 십자가의 사랑이 증오의 세력을 이긴다는 것을 깨닫고, 사랑으로 이념과 세대, 지역갈등을 해결하는 전위대가 되어야 한다. 특히 계엄과 탄핵으로 갈라진 국민통합의 중재자, 화해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교회가 미래로 나갈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안에서 불붙었을 때, 증오의 힘은 극복되고,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샬롬)을 교육 받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힘에 의한 평화를 찬양, 분단의 깊이를 더 깊게 만들고 있다. 이념과 갈등을 부채질하기에 바쁘다. 이제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극우세력으로 비판받기에 이르렀다.

평화(샬롬)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다. 예수님은 평화의 복음을 선포했다. 즉 예수님은 평화를 행동으로 보이시고, 가르쳤다. 하나님의 참사랑과 평화는 복음이다. 그런데 세계는 너를 죽이기 위해 무기를 만드는데 천문학적인 달러를 쏟아 붙는다. 이런 사이 매년 수만 명이 영양실조나, 굶주림, 전쟁으로 죽어가고 있다. 강대국들은 무기를 팔아먹기 위해 전쟁을 부추긴다.

우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에서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가공 할 신무기를 경쟁적으로 개발되면서, 재래무기들은 어디엔가는 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들은 절대로 남북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아니 한반도의 운명을 외세에 맡기는 꼴이 됐다. 우리는 이들 나라를 믿고 있을 수만 없다. 분단된 상태로 있어야 이들 나라에 돈이 되고 이익이 된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안다. 이런 상태로 우리민족은 새로운 나라를 열어갈 수 없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에도 참여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일부 국민과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아메리카 팍스, 차이나 팍스, 재팬 팍스에 갇혀 있다.

허망하기 그지없다. 오늘 한국교회는 남북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오늘 이념적인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 국민통합도 없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한민족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워야 한다. 이 곳이 바로 예수님의 삶의 현장이며, 역사의 현장이다. 이 곳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이것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준 평화이며, 하나님의 참사랑이고,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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