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은 한마디로 전쟁과 기아로 인해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오늘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한마디로 강대국에 의해서 일어나고, 그것도 십자군전쟁 이후 모든 전쟁이 기독교 국가들에 의해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멈추진 않는 가자지구의 전쟁은, 가자지구를 이스라엘로 만들기 위한 인종청소를 위한 학살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들의 가옥들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모두 지붕 없는 가옥이 되어버렸고,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은 생존을 위한 먹을 물과 음식이 없어, 하나님을 향한 이들의 호소는 하늘에 사무친다. 이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수십만 명이 전쟁으로 인해 살해를 당했음에도, 서방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챙기며, 전쟁을 부추긴다. 이렇게 고난당하는 민족을 그대로 두고서는 여호와의 날’, ‘심판의 날을 기다릴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없다. 히틀러는 유대인 600만명을 살해했다.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히틀러의 유대인 인종청소에 동조했고, 히틀러의 최대 협력자로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마디로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하는데, 히틀러 혼자하지 않았다. 유럽인구 70%를 차지하는 기독교인들의 관념이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했다. 기독교인들은 여호와의 날을 희망의 날로 착각하며 신앙생활을 한다.

분명 여호와의 날심판의 날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힘에 의한 평화를 말하며, 전쟁을 부추기는 등 악행 저지르면서도, 불의를 찬양하면서도, ‘여호와의 날을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여호와의 날을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희망의 날로 착각한다. 아모스나, 요엘 등 구약성경의 예언자들은 여호와의 날을 심판의 날로 규정하고 있다. 두려움을 갖고, 불의에 맞서야 하는 기독교인들은 오히려 전쟁을 부추기며, 힘에 의한 평화, 로마팍스를 외친다.

그것은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치는 극우화된 한국교회를 보면 극명해진다. 신학자 본회퍼는 히틀러와 히틀러의 유대인 인종청소에 협력했던 유럽기독교인들을 보면서, “유대인을 위해서 일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의 인종청소로 고난을 당하는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러시아 푸틴의 전쟁놀이로 고난을 당하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자만이 성령을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을 부를 수 있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고난당하는 이웃을 그대로 두고서 여호와의 날을 맞을 수 없고,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할 수 없다. 기독교인 모두가 이들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성경의 진리를 잊고,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독교인 모두는, 아니 세계민족 모두는 있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요즘 살기 위해 노동현장에 나갔다가 주검으로 돌아오는 노동자의 소식이 매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는 살기 위해서 일하러 갔다가 주검으로 돌아온 일이 3번에 걸쳐 발생했다.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은 고 김충현씨의 영정을 들고 대통령궁을 찾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을 호소했다. 권영국 후보는 대선기간 중 두 번 고 김충현 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 주려는 정치인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재명 정부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도 이들의 호소문을 전달받고, 고통당하는 노동자의 마음을 위로했다.

지난 8일 성령강림절이 시작됐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여호와의 날을 말할 수 있고, 하나님나라에 참여할 수 있다. 심판의 날 고난당하는 이웃을 위해서 봉사했다고 말하며, 성령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 성령은 주권자로서, 전쟁과 기아로 무너진 사람, 현대물질 문명 속에서 힘없이 고통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한다. 헌데 오늘을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성령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성령! 성령!을 외친다.

성령을 망령되게 한다. 이들은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로 섬기는 자들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신앙에서 이탈한 기득권세력이다. 극우화된 한국교회는 성령강림절을 맞아 전쟁과 기아로 고난당하는 백성, 먹고살기 위해 일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여호와의 날’, ‘심판의 날을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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