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교수.
이민 교수.

조선일보이규태 코너23년 동안 6702회를 연재하여 대한민국 언론사상 최장기 칼럼 기록을 세운 언론인 이규태(1933~2006)한국인의 버릇(신원문화사, 1991)에서 한국인의 강한 서열의식을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한국인은 대체로 사람을 만날 때 신분, 나이, 출신 학교, 같은 종씨와 항렬을 따지기를 좋아하며 명함 내놓기를 좋아한다. 자신을 기준으로 나보다 신분이 높은가 낮은가, 나이가 나보다 많은가 적은가, 나보다 좋은 학교 나왔나 못 나왔나, 동창인지 선배인지 후배인지를 계산한다. 그는 이런 성향이 한국인 특유의 유교 신분주의에 따른 서열문화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한국인이 고쳐야 할 악습 중의 하나가 바로 허영과 겉치레, 그리고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과한 명예욕이다.

명예욕(名譽慾)’의 사전적 정의는 세상이 널리 인정하는 좋은 평판이나 이름을 얻으려는 욕망이다. 여기에서 욕망의 정의는 무엇을 가지거나 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이는 욕심과 동의어며 소비적인 측면에서는 낭비이자 사람에게는 과시욕이라는 꼬리표로 따라다닌다. 자본주의에서 가장 원초적 욕망은 금전욕이다. 현대 사회의 행운의 상징인 로또1등 당첨 확률이 800만 분의 1에 이른다. 금전욕이 상승하면 권력욕으로 진화한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명예욕이다. 명예와 명예욕은 의미와 뉘앙스가 다르다. ‘명예(名譽)’세상에 널리 인정받아 얻은 좋은 평판이나 이름으로 긍정적이며 찬사에 걸맞지만 명예욕은 온갖 추태를 연상시키는 부정적 이미지다.

() 아우구스티누스(A. Augustinus, 354~430)고백록(Confessiones)에서 인간의 맨 밑바닥에 자리한 칭찬과 명예욕에 대한 유혹은 죄라고 규정하면서 자기 부정을 통해 멀리하는 훈련을 주문했다. 그는 칭찬의 유혹을 거부할 때조차 그 또한 유혹이다. 왜냐하면 유혹을 거부하는 행동을 통해서까지도 나 자신을 드러내려 하기 때문이다.”라고 일갈했다. 건전한 명예는 누려도 좋지만 교만의 열매인 명예욕은 눌러야 한다. 아니, 명예는 누리는 게 아니라 누르는 것이다.

과도한 인정 욕구에 기인한 칭찬 욕구와 명예욕은 나르시시즘(自己愛, Narcissism)에 빠진 지도자의 특징이며 그리스도인의 일상적 죄악이다. 이는 교회 안에서는 목회와 봉사라는 이름으로, 교회 밖에서는 구제와 선교 사역에서 위선으로 나타난다. 예수는 마태복음 6장에서 진정한 구제를 위해서 나팔을 불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구제를 하지 말라는 의미다. 성서적 구제는 구제하는 사람이 아닌 구제받는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기념비를 세우는 구제는 봉사가 아니다. 개신교 연합활동이 잘 나가다가 중간에 삐거덕 거리는 이유가 바로 자기 명예욕이다. 자기 이름을 내주지 않으면 파투를 낸다. 서열을 좋아하여 성명서에도 자신의 이름이 맨 앞에 나와야 하며 단체사진을 찍을 때도 습관적으로 센터로 향한다. 이들은 기자회견과 언론에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자기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명예 중독자. 생색내는 행사에는 큰돈을 내지만 알려지지 않는 봉사에는 얼씬거리지도 않는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 봉사는 자기 존재를 상실하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도, 그 모습이 보이지도 않는다. 마지막에는 불평과 원망으로 끝난다. 탈무드는 말한다. “구제는 내가 누구에게 줬는지를 몰라야 하고 구제를 받은 사람도 내가 누구로부터 받았는지를 몰라야 한다.”

한국교회의 병폐 중의 하나가 바로 자기 기념비. 예수의 이름으로 봉사해놓고 감사패와 감사장, 각종 표창장과 상패가 난무한다. 이런 것들은 대개 돌과 크리스털(crystal)로 만들어져 처치도 곤란하다. 입술로는 예수를 찬양하지만 실상으로는 자기 이름 내기에 바쁘다. 한국교회의 끝없는 명예욕은 물량주의, 성과 중심주의, 성장 제일주의를 낳고 급기야는 자기 숭배주의로 전락했다. 개신교 단체들이 밀집한 종로5가는 대표적인 명예욕의 전당이며 명예욕의 끝판왕으로 불린다. 이것이 예수교인가, ‘바리새교인가. 사무엘상 15장에 보면 사울 왕이 교만해져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자기 기념비를 세우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예수회의 창립자 이냐시오 로욜라(Ignacio Loyola, 1491~1556)겸손의 원리가 있다. 첫째는 무질서한 욕망으로부터의 자유함, 둘째는 세상으로부터의 초연함, 셋째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를 좇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닮아가는 것이다.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예수만 따르다보면 하나님께서 은밀한 중에 갚아주신다. 이것이 하늘의 복음이다.

본지 논설위원, 한국교육기획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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