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참 구원론을 말하려면 필수적인 준비 작업이 믿음과 회개와 인간의 선택이나 반응에 대한 위치 정립을 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사관들은 때론 온전한 구원을 아는 일을 훼방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자유의지나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나 인간의 선택이나 회개가 어디에 위치 하는지를 계속해서 정리해 왔다. 불필요하다고 함이 절대 아니다. 그 목적은 말할 것도 없이 참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지 않게 하고자 함이요, 더욱 전심으로 바라보게 하려 함이다. 이는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다. 바울 사도도 오직 믿음을 말하지만 사람이 가진 믿음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믿음의 주체이신 것을 말함과 같다.
지금까지 논한 구원에 있어 큰 중심되는 이런 몇가지 주제와 내용들을 보면 중요한 특징이 있다. 칼빈의 오직 믿음이든 아르미니안의 올바른 선택이든 모두가 말하는 자유의지든 이런 현실의 결국은 인간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된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많이 옳아 보이는 면도 있는데 그 옳아 보이는 내용들은 우리 신앙을 크게 돕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결같이 마귀에게 내어주는 열려져 있는 문과 같다. 사단에게 최고로 중요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일이요, 우리의 눈과 귀가 온전히 예수님께로 향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죄를 사하심과 온전하게 하심이, 구원이, 영생이, 생명이 오직 예수님께 있으니 최고의 훼방은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일인 것이다. 예수님께 전심을 드리지 못하게 훼방하는 최고로 쉬운 방법은 예수님께로 향하는 성도의 눈을 돌려야 하는데 어디로 향하게 해야 쉽게 돌아가겠는가! 그것이 바로 각 사람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일이다. 이것이 마귀의 전략이고 계략이다. 그래서 그토록 오직 믿음이 중요하고 자유의지가 우리에게 있으니 자유의지가 중요하고 그 의지에 의한 올바른 선택이 중요하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사단은 이렇게 한다. (오직 우리를 구원 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그러니까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자유의지에 의한 올바른 선택을 해야...) ‘그러므로, 그러니까’를 사용하여 예수님을 향하는 눈을 돌려 나를 바라보게 만든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이 미혹과 계략에 빠져 오늘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미련한 일인가!
다음 말씀을 놓고 생각해보자. 마태복음 20:29-34 그들이 여리고를 떠나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맹인 두 사람이 길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아멘.
맹인 두사람이 길가에 앉았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소리질러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를 외쳤다. 이들의 뜨거운 믿음이 그들을 구원했는가? 아니다. 맹인들이 예수님을 뜨겁게 믿을 만큼 예수님을 잘 아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들이 자유 의지에 의하여 탁월한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두 소경을 구원 했는가? 아니다. 탁월한 선택을 계획적으로 할만큼 그들에게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요 그럴만한 차분한 생각이나 결정을 심각하게 고민해 볼 여유도 이 순간에는 없다. 그들은 소문이 자자한 예수님이 자기들 앞을 지나가신다는 것을 소리로 듣고 알게 되자 순간 발동 된 것은 절망적인 맹인의 삶을 벗어나고픈 간절함이 그들의 입을 열게 하고 예수님께 부르짖게 한 것이다. 그들은 그 순간 예수님을 놓치면 그것으로 끝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은 자신들의 눈먼 것을 고쳐 주실 예수님께 매달리는 것외에 믿음이 어쩌고 선택이 어쩌고 자유의지가 어쩌고 할 여유가 없다. 그들에게는 오직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구해 주시는 것 그것만이 소망이요 유일한 희망일 뿐이다. 그런 그들을 예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셨다.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을 고쳐 주시고 그들의 절망에서 구원해 주신 것이다.
두 맹인에게 태산같은 믿음이 있어 그 믿음이 그들을 구원한 것이 아니다. 평생의 삶이 하나님 말씀 앞에 올바른 선택만을 하는 의인들이어서 구원 받은 것도 아니다.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셨기에 그들을 구원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온전히 주님게 있는 것이지 인간의 믿음이나 선택이 한 몫을 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나 올바른 선택은 은혜를 입어 구원 받은 자라면 마땅히 드려야 할 당연한 도리이다. 그러므로 이런 함정에 빠져 머리카락 한올도 희고 검게 하지도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지 말라. 눈을 들어 오직 예수님께 집중하자! 그것이 올바른 신앙이다.
동북신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