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 1905~1970)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역자 이시형, 청아출판사, 2020)에는 자신의 생생한 간증이 실려 있다. 그가 어느 날 죽음의 수용소에 끌려가 독일 비밀경찰인 게슈타포를 마주한다. 그는 의사 면허증과 가정, 아내마저 빼앗기고 알몸으로 섰다. 급기야는 차고 있던 시계와 손가락의 반지를 빼주었다. 비밀경찰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자 그는 담대히 말했다. “게슈타포여, 나에게서 당신이 뺐을 수 없는 한 가지가 나에게 아직도 남아 있소. 절대 빼앗을 수 없는 것, 그것은 바로 내 마음 속에 있는 자유라는 것이오. 당신이 아무리 나를 괴롭혀도 내 마음의 평화는 내 것이오.”
어떤 이가 <군 생활의 불편함>을 수필로 옮겨놓았다. “잠들만하면 기상이고, 먹을 만하면 식사 끝이고, 외박할 만하면 외박금지령이 내려오고, 놀만 하면 휴식 끝이고, 볼만 하면 동작 그만이고, 정들 만하면 전출이고, 휴가갈 만하면 비상 걸리고, 편지 볼만하면 소등하고, 편안할 만하면 전역시킨다.” 자유를 수호하는 일은 불편함을 넘어서 대가를 요구한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아버지는 집밖에 나가면 개고생인데도 아들에게 집 나갈 자유를 허락한다. 아버지는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와 죄를 짓지 않을 자유를 평등하게 허용한다. 아버지는 이미 용서해놓고 기다린다. 그리고 탕자에게 신을 직접 신겨줌으로 노예가 아닌 자유인임을 선포한다. 아가페의 사랑은 말이 아닌 침묵과 기다림, 용서와 실천이다. 자유로 자유 되게 하는 자유는 말이 아닌 눈물과 땀, 손발과 무릎으로 지켜진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예수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다. 모든 이적 중 클라이맥스다. 신학적으로는 죽은 자도 살리시는 예수가 역설적으로 자신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계시적 의미가 있다. 나사로는 이미 죽었다. 스스로 살아나올 수 없다. 인간은 스스로 자유할 수 없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 매인 자를 푸는 것은 생명의 문제다. 하나님만 하시는 일이다. 예수가 “나사로야 나오너라”하시니 나사로는 수의 차림으로 나온다. 수건으로 얼굴을 싸맨 채로 무덤에서 걸어 나온다. 예수는 다시 말씀하신다.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나사로는 동화에서처럼 ‘펑’하고 무덤이 폭발하면서 ‘짠’하고 부활하지 않았다. 예수는 나사로를 감싼 수건을 풀어주라고 사람들에게 이르신다. 즉, 나사로를 살리는 일은 예수가 직접 하시고 얼굴의 수건을 풀어주는 일은 사람들에게 시키셨다. 이에 앞서 무덤의 돌을 옮기는 일도 시키셨다. 죽음에서 자유하게 하는 생명에 관한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만이 하신다. 하지만 일단 살아난 사람을 풀어주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다. 하나님의 능력만이 죄와 죽음에 묶인 영육을 자유하게 하신다. 그러나 일단 풀어놓은 다음 자유하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다. 하나님이 하실 일(His part)과 사람이 할 일(my part)이 따로 있다.
자유는 전쟁, 혁명, 쟁취로 얻어지지 않는다. 자유는 은총으로 주어진다.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의 8·15 해방은 거저 얻은 것이다. 피 흘리는 독립운동과 순교와 순국이 있었지만 독립은 은총으로 얻어졌다. 그럼에도 자유의 소중함을 망각하며 방종과 방탕에 빠져서 6·25 전쟁을 만났다. 거저 얻은 자유는 더 큰 재앙을 초래한다. 자유는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주어진다. 자유는 공짜로 지켜지는 게 아니다. 합당한 수고와 희생이 있고서야 고귀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자유와 양심과 신앙의 자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자유라는 나무는 독재자의 피와 애국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시인 백무산(1955~)의 시 <정지의 힘>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자유의 본질을 깨우친다.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달리는 이유를 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본지 논설위원, 한국교육기획협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