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교수.
이민 교수.

인간은 두 부류가 있다. ‘자기 주도적유형과 하나님 주도적유형이다. 자기 주도적 유형은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잘 나갈 때나 어려울 때 모든 결정을 자신이 내린다. 야곱이 대표적이다. 야곱은 평생 자신의 힘으로 지냈다. ‘하나님의 열심이 아닌 자신의 열심으로 살았다. 그가 고집을 꺾지 않자 하나님은 고관절을 내리치신다. 다리를 절게 되니 속도는 늦어졌지만 바른 방향을 찾았다. 자기 주도적 인생의 결과는 험악한 세월”(47:9)이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아브라함은 영성 주도적 인생이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지금 사는 고향을 떠나라고 하신다.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 100세에 얻은 이삭을 바치라고 하니 그대로 순종했다. 아브라함은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리라”(11:19)는 믿음으로 십자가와 부활마저 인식하게 된다. 순종은 구약의 복과 신약의 은혜를 가져다준다.

바울은 노력과 신념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력하지 않는 것이 최선임을 체험케 하셨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비두니아 지역으로 전도여행을 떠나려 했으나 드로아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렸다. 자신의 계획이 번번이 좌절되었지만 드로아에서의 꺾임이 유럽 선교를 탄생시켰다. 회심 이전의 사울은 능동태 인생이었지만 바울은 수동태 인생이었다.

빌리 그레이엄(William Franklin Graham, 1918~2018)Nearing Home(Thorndike Press, 2012)에서 고백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가 75세로 갈대아 우르를 떠나게 된다.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가 80세였다. 애굽 궁전에서 40, 광야에서 40, 드디어 80세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진다.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때가 80세였다. 내 나이 90에 성경을 읽으니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선명하게 들린다.”

인생은 수동태다.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다. 시편 기자는 인생은 태생부터 수동태임을 노래한다.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71:6) 모태에서부터 수동적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하나님이 택하시고, 의지하게 만드셨다. 나이 들어서도 나의 쓰임은 내가 아닌 하나님이 결정하신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하나같이 오랜 시간 다듬어진 사람들이다. 자신의 열심은 능력이 아니다. 순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깨져야 한다. 고난과 기다림을 통해 철저히 부서진 뒤에야 자신의 힘이 아닌 주의 능력으로 일한다.

믿음은 수동태다. 내 길보다 더 높은 길이 있으며 내 생각보다 더 높은 생각이 있다. 하나님은 베드로처럼 열심이 지나친 사람을 깨뜨리신다. 믿음은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는 대상이 아닌 믿어지는 실체며, 성경의 진리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어진다. 하나님의 일은 되는 것이다. 회개도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다.

믿음이란 내 인생의 주어를 바꾸는 행위다. “내가가 아닌 하나님이로 말이다. 하나님이 주시고 나는 받는다. 그 분이 변화시키시고 나는 변화된다. ‘타락이란 주어와 목적어가 잘못 위치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어가 되면 어떤 형편에도 자족한다. 비천에도, 풍부에도 감사하다. 하나님이 주어인 사람은 강하다.

예수 제자의 조건은 나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는 것이다. 불필요한 자존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십자가에 못 박는 시발점은 예배다. 예배는 믿음을 수동태로 바꾸는 최적의 길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내 인생을 맞추는 최고의 시간이다. 예배는 자기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를 붙드는 제사다.

옛날에 어떤 왕이 신하들에게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법을 가지고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많은 신하들이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다. 독을 막고 부어 봤자 물이 다 빠져 나갔다. 그런데, 한 노인이 밑 빠진 독을 강물에 던졌다. 강물 속에서 잠긴 독에 물이 가득 채워졌다. 인생은 밑 빠진 독이다. ‘부음을 통해서는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다. 오로지 잠김을 통해서만 채울 수 있다. 믿음은 예수 십자가에 푹 잠기는 신비다.

본지 논설위원, 한국교육기획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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