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馬) 목장에서 말을 키우는 주인이 갑자기 회오리 폭풍우가 몰아치자 하늘에 기도를 했다. “신이시여, 무사히 태풍이 지나가도록 해 주십시오.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말을 팔아 그 돈을 남을 위해 모두 쓰겠습니다.” 잠시 후 회오리 폭풍이 가라앉았다. 그러자 주인은 약속대로 말을 끌고 시장으로 갔다. 주인의 다른 한 손에는 허약한 염소 한 마리가 들려있었다. 이를 본 시장 사람이 다가와서 물었다. “여보시오. 그 말을 파는 겁니까?” “물론이죠. 헌데 이 염소를 같이 팔아야 합니다.” “그럼 전부 얼마인가요?” “염소가 1000만원, 말이 3만원입니다.”
“2015년 8월 15일의 약속. 2025년 8월 15일 오전 7시 48분 여기서 만나요” 지난 8월 22일 오후 10시 KBS2 <다큐멘터리 3일 특별판-어바웃 타임>이 방송되었다. 종영된 <다큐 3일>에 출연한 대학생들과 PD는 10년 후 안동역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날 옛 안동역에 그 재회를 보기 위해 300여 명이 모였다. 폭발물 설치 신고로 촬영은 예정대로 이뤄지지 못했지만 약속 당사자 중 한 명인 여성이 도착했다고 한다. 약속의 진정한 의미는 성취뿐만 아니라 약속을 지키기 위한 모든 시간과 정성에도 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과 약속을 지키지 못할 위기를 겪으며 좌절했던 경험이 모여 현재의 나를 만든다. 이것이 약속의 방정식이다.
한비자(韓非子, BC 280~BC 233)의 <증자(曾子)의 돼지>는 약속의 본질을 깨우쳐준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갈 때 아들이 울면서 따라간다고 보챘다. 아내는 “돌아와서 돼지를 잡아줄 테니 집에 있으라”고 달래자 아이는 말을 따랐다. 아내가 장을 보고 돌아오니 증자가 돼지를 잡으려 했다. 아내는 “아이를 달래려 거짓말했는데 진짜 잡으면 어떡하냐”고 했다. 증자는 “당신은 왜 아이에게 속임수를 가르치고 있느냐. 어미가 자식을 속이면 자식이 어미를 믿지 않는다”며 돼지를 잡았다. ‘팍타순트 세르반다(pacta sunt servanda)’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뜻의 고대 로마시대의 경구다.
약속할 때 새끼손가락을 거는 관습은 세계적이다. 미국에는 ‘핑키 스웨어(pinkie swear)’가 있으며 일본은 ‘유비키리(ゆびきり)’가 있다. 약속을 어기면 손가락을 자르겠다는 속뜻이 담겨있다. 약속은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고 지켜진다. 약속을 잘 못 지키는 이유는 손해 보기 싫기 때문이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은 손해 볼 줄 아는 사람,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일만 달란트의 은혜를 받은 자다. 백 데나리온 정도를 손해 볼 수 있어야 약속을 지킨다. 성경은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지키라고 말씀한다. 은혜 아니면 약속도 못 지킨다. 약속은 은혜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께 아들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10년간 얻지 못했다. 기다리지 못해 첩을 얻어 이스마엘을 낳았다. ‘서두르면 이스마엘이고, 기다리면 이삭’이다. 기독교 신앙은 하늘의 약속과 성취의 긴장 관계 속에 자라난다. 구약 성서는 오실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며 신약은 오신 메시아에 대한 성취다. 성서적 약속은 두 차원이 있다.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이다. 약속에 대한 완전한 신뢰가 있으면 ‘아직’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이미’ 받은 것으로 간주하며 기뻐한다. 약속은 기다림과 맡김이라는 믿음과 정비례한다.
믿음은 약속과 성취 사이의 차이를 메꾸는 힘이다. 약속과 성취 사이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때 믿음이 성장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시기 보다는 좋은 것으로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약속을 받을 그릇을 준비시키신다. 고난과 재난으로, 시련과 환난으로 그릇을 키우신다. 기다림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라고 고백한다.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시 31:15) 하나님께 맡기면 약속과 성취는 동의어가 된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 현실이 힘들어 하나님을 원망하며 앞에 있는 가나안 약속을 망각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메시지다. 현재가 어렵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과거의 은혜를 망각하며 미래의 약속도 잊어버린다. 과거에 대한 바른 은혜의 해석을 가진 사람만이 성취의 미래를 맛볼 수 있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 이것이 약속과 성취의 복음이다.
본지 논설위원, 한국교육기획협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