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생명, 사랑, 평화의 종교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과 인간의 욕망에 의해 파괴되는 하나님의 창조질서, 이런 상황서 예수님의 평화(샬롬)과 하나님의 창조질서 회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 사랑의 종교이다. 또한 평화의 종교이며, 고난의 종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은 참사랑이고, 예수님은 참 평화, 참 생명이라고 고백한다. 오늘날 인간은 성장이라는 미명아래 하나님의 창조질서, 생태계를 교란시키며, 스스로 죽음의 길, 파멸의 길로 가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창조적선물인 지구는 평화가 정착되지 않고서는 미래로 나갈 수 없다. 오늘 세계는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한 결과, 기후위기에 직면해 있고, 곳곳에서 자연재해가 발생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물로 준 창조세계를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 그럼에도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끝없이 도전하며,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간악한 인간들은 전쟁을 일으켜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고 있다. 그래서 성서는 서로의 갈등을 화해하고, 화합하여 하나되라고 교육한다. 그리고 일부 국가와 교회는 깨끗한 환경과 하나님의 창조질서회복을 위해 봉사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고 행동한다. 전쟁 없는 평화나, 하나님의 창조질서보전은 인간 모두가 욕심을 버리지 않고서는 실현할 수 없다. 이기적인 발로인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

모두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매몰돼 하나님이 받아야 할 영광을 독차지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개발이라는 이름아래 마구 파헤치고 있다. 욕심쟁이가 되어버린 인간은 자신과 가족, 자신이 속한 공동체만을 위해 일하며,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창조적 선물인 지구를 파멸로 몰아넣고 있다.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이웃나라를 침략하는가 하면, 인종청소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인종청소를 보면 실감할 수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도 멈추지 않고 있다. 이같은 전쟁은 지도자들이 힘에 의한 평화’, 로마팍스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고, 전쟁을 통해 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목적과 수단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무기를 팔아먹는 강대국들의 국가이기주의의 발로이다. 여기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서방국가와 중러북 전쟁으로 번지지나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이 전쟁은 러시아와 서방의 전쟁이며, 무기상들과 무기상으로부터 최대 후원국인 미국이 전쟁을 부추긴다. 또한 제3세계 국가들은 IMF(국제통화기금을 비롯한 세계금융기구 등으로부터 돈을 빌려 자신을 아성을 쌓기 위한 무기를 구입, 국민들을 괴롭힌다. 이런 상태로는 인류의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현할 수 없다. 이웃과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기대러 살아갈 수 없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통해 살맛나는 세상 만들어야
예언자 전통의 예수님의 평화와 하나님의 창조질서 회복운동에 참여

예언자 각성에서의 환경, 평화운동 참여

인간의 욕심이 하늘를 찌를 정도의 바벨탑을 쌓는 한 예수님의 참 평화, 샬롬은 기대할 수 없다. 하나님의 피조물들은 욕심쟁이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이들에 의해 화염에 휩싸이고, 피조물들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며, 하나님의 창조세계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물로 준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다.

오늘을 살아가는 세계인들은 생사 위기를 실감하며, 불안한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환경운동가들은 인류의 생사 위기를 미리 예측하고, 예언자적 각성에서 이것을 미리 막아보려고 환경운동과 전쟁 없는 평화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각성에도 불구하고 강대국들은 무기경쟁을 벌이며,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러시아, 중국 등이 보유한 핵무기는 인류 전체를 50번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이런 세계 속에서 환경운동과 평화운동을 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전쟁이 없는 평화가 담보되어야만 건강한 지구, 깨끗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전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서로 기대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인류의 역사는 이성적이지 못했다. 급하게 비이성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국교회의 보수적인 한 목사는 목회자들의 모임에서 한민족의 해방과 관련해서, “만주 벌판에 독립군은 없었다. 원자탄 2방이 해결했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이 목사의 주장은 일제 36년의 식민지 아래서의 한민족의 아픔을 몰각한 것은 물론, 한민족의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예수님의 샬롬을 부정하고, 강대국의 힘에 의한 평화, 팍스를 극찬하는 이 발언은 오늘 한국교회 대부분의 목사들의 생각이며, 이 목사의 이 같은 주장에 교인들은 아멘 할렐루야로 화답한다. 이런 목회자들이 있는 한 한국교회는 평화와 환경, 생명과 자유를 말할 자격이 없다. 이런 목사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부정하며, 강대국을 우상으로 섬기는 가짜 영적지도자이다.

인류 모두는 예수님의 평화가 담보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전할 수 없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핵에 의해, 공해로 인해 죽어갈 수밖에 없다.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순식간에 10만 명을 죽여 버렸다. 이 파괴력에 세계는 경악했다. 그리고 세계는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소리쳤다. 인간이 이성적이라면 이러한 무기는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80년이 지난 오늘 세계는 한번에 1억 명을 살상할 수 있는 가공할 살인무기를 만들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어떤 미친 지도자가 단추만 누르면 인류가 멸종될 수밖에 없는 위기에 놓였다. 이 살상무기는 오늘도 경쟁적으로 계속해서 생산되고 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무기경쟁으로 인해 위기에 처했다. 이렇게 생산된 무기는 가난한 나라로 팔려 나가고 있으며, 새 무기가 개발되면서, 낡은 재래무기는 쌓이고, 이 무기는 어디엔가 버려야 한다.

분단국가이며, 전쟁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각성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와 그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폐허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도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 6.25한국전쟁을 경험한 남북한 민족은 전쟁의 고통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향한 행진을 멈출 수 없다.

핵무기의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는 인류

분명한 것은 전쟁의 고통에 죽고, 파괴되는 것은 가난한 나라이며, 이를 통해 크게 돈을 버는 사람은 무기 상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강대국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그러하다. 오늘 세계는 인류 전체를 하루아침에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 어느 독재자가 자신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발작을 하면, 전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의 핵개발을 반대하며, 남한도 핵무장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류는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죽음의 공포에서 살아남기 위해 평화운동을 벌여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 전쟁은 내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다. 모두 함께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이다. 세계인은 살기 위해 힘에 의한 평화’, 무기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1기 트럼프 정부 당시 북한과 미국이 핵단추 크기 경쟁을 벌였다,

북한의 김정은은 내 책상 위에 핵단추가 있다고 했다. 여기에 맞서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의 책상 위에 더 큰 핵단추가 있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6·25 전쟁 75주년을 맞아 전쟁을 다시 겪을 일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에 올바로 응답하는 길이다고 했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안보는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 즉 평화를 만드는 것이다. 군사력에만 의존해 국가를 지키는 시대는 지나갔다.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반도는 핵무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여기에는 양심도, 도덕도, 종교도, 신앙도 없다. 세계는 실리만을 추구한다. 누구인가는 이 죽음의 행렬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 중심에 예언자 전통을 이어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교육하고 있는 샬롬, 평화를 위해 일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평화를 말해야 할 교회는, 오히려 갈등과 반목을 부추기며, 힘에 의한 평화, 팍스를 노래한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들은 죽어가는 생태계의 위기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평화(샬롬)를 위해서 행동하는 사람도 그리스도인이며, 팍스를 외치는 사람도 그리스도인이다. 그래서 예언자 전통을 이은 목회자와 그리스도인들은 한민족의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민족의 화해를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한국교회서 좌파’·‘빨갱이나 하는 짓이 되어 버렸다.

처절한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자

오늘 세계는 전쟁과 생태학적 위기를 맞고 있다. 인류는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세계가 무기경쟁을 벌이면, 얼마안가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생태학적 위기가 찾아온다는 예언자적 절규가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강대국의 무기경쟁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기술문명을 독점하는 자들이 귀가 막혀 이런 예언자의 절규를 귀담아 들을 일이 없다. 기술문명을 내세워 바다 또는 지구 밖에서 자원을 발굴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그것도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데 참담하다. 이들은 돈만 있으면,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1세계 국가들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망가트렸다면, 오늘날은 개발도상국들이 앞을 다투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망가트리고 있다. 이제 북극곰도, 펭귄도 살아갈 땅을 욕심쟁이 인간들에 의해 망가져 버렸다. 이런 세상에서 생태계는 절규한다. 돌로 만든 떡을 먹은 인간들은 마음이 굳어져 이들의 절규를 듣지 못한다.

오늘 세계가 사용하는 살상 화학물질은 농업과 공업 분야에서만, 8만 여종에 이른다고 한다. 그것은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독이다. 이것을 땅에 뿌리면 땅은 죽고, 더 독한 것을 써야 한다. 또 이 물질은 대기오염을 유발한다. 그럼에도 이 땅에는 매년 1천여 종에 이르는 새 화학물질이 개발되고 있다. 공해로 매년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면적인 20핵타르의 산림이 파괴되고 있다.

이러다가는 얼마 안가서 지구의 3/1이 불모지로 변할 것이다. 그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동식물이 멸종되고,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사람과 동식물이 화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 절실한 시대에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불안한 가운데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화석연료의 사용량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탄산 가스량은 늘어나 지구의 온도는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숨을 쉴 수 없다고 아우성친다. 동식물에게 치명타를 안겨주고 있다. 결국 공업화는 지구를 죽음의 길로 내몰고, 하나님의 창조질서에는 균열이 생기고 있다. 그럼에도 기계는 멈추지 않는다. 과잉생산을 해, 이를 판매하기 위해 미디어를 동원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환경오염에 휩싸이게 만들고, 피조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누가 죽음의 행진을 브레이크를(?)

누가 이 죽음의 행진에 어떻게 브레이크를 걸까(?) 국가이기주의에 빠져들고 있는 세계정치구조로는 이를 막을 수 없다. 강대국의 국가이기주의로 인해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다. 세계 식량생산의 50%는 세계인구의 20%도 안 되는 선진국에서 소비한다. 이른바 선진국이 사용하는 에너지 사용이 저소득 국민의 40배가 된다. 한마디로 미국 국민 1인이 아프리카 40인이 쓰는 자원을 소비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의 국민은 매년 5천만명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지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세계의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은 공해로 땅이 황폐해져 기아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것은 문명의 이기가 불러온 재앙이다. 한마디로 문명은 사람과 사람 사이로 끼어들어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사는 길을 가로 막고 있다. 사람은 더불어 존재하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기계와 다르다. 사람은 이웃과 생사고락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사람이다. 사람은 이웃과 고락을 함께 나누는데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래야만 새로운 나라를 창출할 수 있다. 여기에는 기도도, 윤리도, 도덕도, 애환도 있다. 기계문명의 발달은 인간에게 편리와 능률을 가져다가 주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로 인해 인간사회는 비정해져 가고 있다. 서구는 벌써 그 비극으로 인해 울고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기계화 된지 이미 오래되었다. 아이들과 부모간의 인정이 고갈된 결과, 아이들은 기계적으로 변화되어 버렸다. 한마디로 아이를 자신의 만족을 위해 악용한다. 그것은 너를 위해 주고받을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정이 고갈된 우리사회는 몰인정한 사회로 변화되어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자신을 테크놀로지에 내 맡긴 결과이며, 인간을 기계화시킨 결과이다.

한국사회는 해방 이래 안보논리에 빠진 나머지, 이를 비판하는 사람도, 군축반대운동도, 평화운동도, 남북한민족의 화해운동도 전개할 수 없었다. 북한의 무기개발에 맞서 대한민국은 전투기 생산과 미사일 개발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이 물건들이 어디에 쓰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북도 더할 나위 없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분단된 상태에 있는 남북한은 분단 80년 동안 서로 경계하며, 싸움 준비만 해 왔다.

서로 같은 민족이 아니었다. 우리가 죽여야 할 적이었다. 이재명 정부는 남북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담보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민족적인 문제에 대해서 국민들은 환영하면서도, 우려하는 이유는 80년 동안 분단이 고착화되었고, 서로를 죽이기 위해 전쟁준비를 해 왔기 때문이다. 한민족은 한반도의 문제를 우리의 땅에서 우리민족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오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힘에 의한 평화, 강대국을 우상으로 섬기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강대국 미국의 눈치 보기 바쁜 대한민국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돈이라면 가족도, 이웃도 없다. 사람을 살해하면서 빼앗는다. 존속살인도 마다하지를 않는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몰린다. 뿌리 없는 떠돌이들은 윤리와 도덕의 울타리를 허물어 버린다. 여기에다 정부는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한다. 그리고 돈을 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국민들의 삶의 현장은 피폐해져 가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 아래서 국민들은 모르는 사람을 보면, 고발대상인가, 아닌가를 생각했다.

이제 사람을 일당 10만원, 7만원, 15만원으로 계산하는 세상이다. 인간이 죽음에로 줄달음치고 있는 동안에 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70-80년대 성장하는 한국교회를 보고 기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님의 역사의 현장’, ‘삶의 현장과 철저하게 유리되어 있었다. 예수님이 계신 역사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지 못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미천한 사람, 떠돌이 등 보잘 것 없는 사람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하지 못했다.

교회는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면서,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권력의 시녀노릇을 했다. 교회 안에 인권이라는 것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렇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나를 위해서 아니라, 너를 위해서, 홀로가 아니라 집단을 위해서 존재의 가치를 찾아야 함에도, 그렇지 못했다. 너를 살리기 위해, 집단을 살리기 위해, 민족을 살리기 위해, 세계민족을 살리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실천하며,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한다면,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 몰아야 한다. 이것이 선교의 참 뜻이 아닌가. 선교는 죽음에서 헤매는 사람을 살게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잘못된 세계,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들과 싸워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교훈이다. 그리스도교는 죽음과 고통을 뛰어넘는 부활, 새로운 삶의 길을 전혀 보여주지를 못하고 있다.

교회는 고뇌와 죽음을 몰각하고, 행복과 영광만을 약속한다. 이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아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역사적, 정치적인 삶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몰각한 결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현장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을 직시하고, 세계민족을 죽음으로 내모는 무기가 무엇인가를 직시하고, 이것들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죽임당한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사실을 믿는다면,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힌 그것들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리고 건강한 대한민국, 건강한 세계를 위해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균열을 막아야 한다. 그것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화해이며, 하나님과 자연과의 화해이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과의 화해를 통해 사람들은 살맛나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이것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진 참선교이다. 이런 세상은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경쟁적으로 살인무기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한, 담보해 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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