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빌립 목사.
김빌립 목사.

교회에서 공동체라는 단어를 지금처럼 계속 사용할 것인지에 대하여 깊이 고민해 보기를 원한다. 공동체라는 말은 같은 무리끼리 모여 이루는 집단.’을 말한다. 이 단어가 언제부터 교회에 사용되기 시작한지, 그 유래가 어떠한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이 교회의 정체성을 상당히 어그러뜨리고 있다. 공동체라는 단어의 본래 뜻대로 교회를 생활이나 행동 또는 목적 따위를 같이하는 집단.’으로 은연중 여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교회마다 함께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을 중심으로 운영이 된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님께서 성도들에게 지금과 같은 공동체 생활을 하라고 세우신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구원을 바르게 알면 우리의 신앙의 방향이 지금보다는 정말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 중 한가지는 교회의 참된 역할인데 교회는 신앙공동체로서 성도들이 많이 모이는 것이 좋은 교회이고 성공한 교회로 여기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많이 모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도 개개인이 예수님의 진리로 거듭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 성화에 더 역점을 두고 나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에 니고데모에게 가르치신 말씀대로 성도는 물과 피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교회는 성도가 진리로 거듭나게 하기 위하여 준비된 곳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치 못하다. 목회자들이 너무 쉽게 하고 있는 다음 말을 생각해 보고 분별해 보자.

우리나라 목회자들의 설교중에 유행어처럼 사용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라는 말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너무 쉽게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라는 말을 하며 이 말이 진짜 진리인줄로 생각하고 있는 목회자도 있는것 같다. 그러나 마태복음 13장의 구원을 깊이 묵상한다면 목회자들의 이 말이 얼마나 패역한 말인지 알게 될 것이다. 굉장히 좋은 말 같고 성경적인 것처럼 보여도 마태복음 13장의 말씀과 비교해보면 많이 어그러진 말이다. 좋은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믿음은 오직 예수님께만 드려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또 다른 쪽으로 보면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이니 믿다가 실망하지 말고 차라리 그러려니 하고 사랑해야 된다고 하는 말이기도 하다. 교회안에서도 서로 믿을 수 없는 실망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니 사람의 악함을 인정하고 차라리 시험에 들지 말게 하려는 의도가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가르친다면 세상에 세우신 교회의 역할을 우리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이 말이 예수님앞에 패역한 이유는 이 말 자체가 성도가 거듭나는 것을 아예 부정하고 서로 믿지 못하게 하는 사단이 원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교회안에서 거듭나게 하시고자 하는데 교회는 사람을 믿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는 말은 그 말 자체도 모순이다. 믿을수도 없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가 있을까? 속으로 너는 도둑인 것을 알아! 그런데 나는 사랑해 이게 가능할까? 그럴수 없다 믿음이 동반되지 않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불신을 품고 진정한 사랑을 할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믿을수 있을까? 너의 지금 모습은 이럴지라도 반드시 예수님께서 새롭게 변화시켜 주실거야! 예수님께서 반드시 고쳐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예수님께서 역사 하실 것을 믿을 때 그 믿음 위에서 서로 사랑할 수 있고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 교회들이 성도의 거듭남을 포기하고 사람이 새로 태어나는 것을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한다면 이는 정말 주님앞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교회는 그러면 안된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이 성도들의 성화에 열심이지 않고, 사람은 고쳐지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이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교회의 역할과는 너무나 다르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성도의 거듭남이요 성화이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13장에 비유로 말씀 하시기를 (마태복음 13:31-33)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아멘.

모든 씨보다 작은 씨가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일만한 성장이나,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하신 말씀은 모두 우리의 심령 안에서 일어나는 거듭남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 가장 중요한 것은 성도의 거듭남이다. 그것이 교회를 세상에 세우신 이유요 구원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목회자들은 지금보다 더 개개인의 성화를 중점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이끌어야 한다. 씨뿌리는 비유의 말씀처럼 길가와 돌밭과 가시와 엉겅퀴 밭이 거듭나서 옥토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결국 교회에서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공동체라는 단어가 성도를 한가족으로 여기게 하는 좋은 점이 있을 지라도 그것이 예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최종 목적이 아니다.

동북신학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