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웰푸드의 초코 과자 ‘칸쵸’ 출시 40주년 기념 ‘내 이름을 찾아라’ 이벤트가 폭발적인 인기다. 칸쵸에는 공식 캐릭터 이름과 최근 국내에서 많이 등록된 신생아 이름 500개 이름이 무작위로 나온다. 구매자들은 본인과, 가족, 친구의 이름을 찾아 인증샷을 올리면 추첨을 통해 경품도 받을 수 있어 젊은 세대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유교 국가 조선에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피하는 관습인 ‘피휘’(避諱)가 있었다. 왕이 바뀔 때마다 전국의 지명과 인명이 변경되는 불편이 극심했다. 그래서 왕의 이름을 외자로 하면서 매우 희귀한 단어를 선택했다. 조선 왕 27명 중 태종 이방원과 단종 이홍위를 제외하고 모두 이름이 한 글자였다. 조선 왕은 임금이 죽은 뒤 생전의 공덕을 기려 붙인 이름인 ‘묘호’(태정태세문단세~)로 불린다. 현대에도 ‘피휘’는 계속된다. 부모님의 성함을 입에 올릴 때는 성을 제외하고 이름 각각에 “~자”를 붙이는 연유가 그것이다.
“나는 박정희란 이름 석 자로 족하다” 박정희 대통령 재직 당시 고령 박씨 문중에서 호(號)를 지어 올렸을 때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적인 편지에서 “대통령 박정희” 대신 “朴正熙 拜(배)”로 끝맺음했다. 처음에는 권위적인 것들을 생리적으로 싫어했다. 명예박사도 거부했다. 허례허식을 멀리하고 청빈하게 살았다. 그의 마지막 몸뚱이에는 허름한 시계, 벗겨진 넥타이핀, 헤어진 혁대만이 걸쳐 있었다. 안타깝게도 인권 탄압의 18년 독재정치 그늘에 ‘조국 근대화’의 이름이 묻혀버렸다. 그래도 박정희는 ‘한강의 기적’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가장 짧은 시는 이름이다”(The shortest poem is a name) 캐나다 시인 소설가 앤 마이클스(Anne Michaels, 1958~)의 말이다. ―참고로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는 프랑스 극작가인 쥘 르나르(Jules Renard, 1864~1910)의 <뱀 너무 길다>이다. 시구절은 “뱀 너무 길다”로 단 한 마디다― 사람의 이름에는 그 사람의 감정, 관계, 세계관, 삶이 녹아 있다. 이름은 짧지만 가장 강력한 인생이다.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가장 짧으면서도 최고의 시다.
김춘수의 시 〈꽃〉은 꽃과 이름의 긴장 관계를 노래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시인이 말하는 꽃은 사물의 존재에 적절히 주어진 언어인 ‘시(詩)’를 의미한다. 물론 여기서 ‘꽃’의 식물학적 실체는 산다화(동백꽃)다. 그는 한평생 언어가 존재의 본질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지를 탐구했다. 이름은 우주의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한 존재론적 집이다. 동시에, 창조주 하나님이 부여해준 ‘하나님 형상의 옷’이며 구속사적 계시다.
‘100문 1답’이 있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 김준곤 목사(1925~2009)가 여름 수련회에서 즐겨 설교한 내용이다. 무슨 질문을 하든지 답은 “예수 그리스도”다. “누가 내 인생의 주인입니까?-예수 그리스도”, “누가 내게 구원을 줍니까?-예수 그리스도”, “누가 내 인생의 진로를 이끄십니까?-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구하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이다. 어지러운 정치와 혼돈의 세계 경제를 구할 유일한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다. 복음적 정의를 세우는 첫걸음은 모든 문제의 해답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닫고 확증하게 하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해답은 오직 예수라는 이름에 있다.
누가복음 10장에는 선한 사마리아인(Good Samaritan)의 비유가 나온다. 강도 만난 이를 살려낸 사람은 레위인도, 제사장도 아닌 사마리아인이었다. 핵심은 착한 사마리아인은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는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사람 앞에 하지 말라고 하셨다. 찬송가 323장 3절 가사에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가 사역의 본질이다. 예수쟁이는 예수로만 만족하며 그리스도인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자다.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는 《윤리학(Ethics)》(복있는사람, 2022)의 <에케 호모>(ecce homo)에서 예수가 아버지께 세 가지를 위탁하셨다고 분석한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을 위탁하셨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업적을 위탁하셨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는 명예를 위탁하셨다. 이적을 경험한 수많은 군중이 호산나를 외치며 따라다녔지만 “스스로 버리노라”의 영성으로 명예에 대한 욕심, 시기, 질투를 초월하셨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마침내 세상을 이기셨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이름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시카고 무디기념교회 강대상에 기록된 말씀이다.
본지 논설위원, 한국교육기획협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