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예언자전통의 교회와 신학자. 교인들이 보잘 것 없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이유로 수난을 당했다. 당시 예언자전통의 교회는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저항하고, 교회를 세계로 불러냈다. 예언자전통의 교회는 도시빈민현장, 노동현장, 민주화운동의 현장 등에 교회를 세우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이로 인해 예언자전통의 교회들은 사정당국으로부터 감시와 사찰의 대상이었다. 또한 예언자전통을 이은 목회자와 교인들이 연행돼 투옥됐다.

이는 분명 교회에 대한 탄압이었다. 종교탄압이었다. 오늘 아이러이하게도 어느 목사의 구속과 이모 목사, 김모 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두고, 한국교회가 다시 탄압저항의 담론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 시절을 연상시키게 한다. 그러나 2025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이 사건을 과거의 프레임으로만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행태에서 우리는 깊은 우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교회가 정치적 탄압을 주장할 때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것이 진정으로 신앙의 자유를 위한 투쟁인가, 아니면 정치적 영향력 감소에 대한 저항인가. 손모 목사 사건의 핵심은 그가 특정 후보를 지지했느냐의 여부가 아니다. 공직선거법이라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행위에 대한 적절한 법적 판단의 문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여전히 모든 법적 분쟁을 신앙의 자유종교탄압의 문제로 프레이밍하는데 익숙해져 버렸다.

한국교회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적 판단이 나올 때마다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 시절의 역사를 끄집어낸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오랫동안 정치권력에 깊이 관여하며, 권력자와 함께 권력을 누리려고 했던 지난날을 망각하고 있다. 수많은 목사들이 정치인과의 사진 촬영을 자랑스럽게 여겨왔고, 교회 내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것이 목사가 해야할 일이다고 괘변을 늘어 놓기도 한다.

이런 한국교회가 권력의 주변에 있을 때는 아무 문제의식 없이 지내다가, 권력에서 소외되었다고 느껴질 때만 정교분리를 외치는 모순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영미선교사 대부분은 정교분리를 내세워 교회 내에서의 독립운동과 민족운동을 철저하게 봉쇄했다. 그럼에도 민족의식이 작게나마 교인들 속에서 살아나 3,1만세운동을 일으키는 등 한국교회가 나라 잃은 민족의 아픔에 함께했다.

당시에도 한국교회는 총독부의 감시와 사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한국교회는 일제의 감시와 탄압에 못이겨 하나님을 배신하고 말았다. 신사참배를 교회적, 교단적으로 결의하고, 신사를 참배하는 배교를 서슴지 않았다. 이는 분명 종교탄압이며, 신앙자유를 박탈당한 결과이다. 신앙의 자유는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질 자유가 아니라, 정치적 압력에서 벗어나 하늘에 속한 본분을 다할 자유다.

예수 그리스도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카이사르의 영역에 깊이 관여하면서 정작 하나님의 영역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당은 갈수록 비어가고, 다음 세대는 교회를 떠나고, 교회의 사회적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한국교회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나오는 순간은 정치적 이슈와 관련되어 있을 때이다. 대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고난을 당할 때는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사회적 존경을 회복하고 싶다면, ‘탄압저항의 낡은 담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법적 문제는 법적으로 대응하고, 신앙의 본질은 더욱 순수하게 지켜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교회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서 소리치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정의를 실현하고,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정치적 탄압에 맞서는 상처 입은 종교 집단이라는 자화상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사회적 치유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 교회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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