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 용 길 목사
우리들이 지키는 교회 절기는 그 기원을 성경에 두고 있는데, 간간이 들리는 성경의 절기 지킴을 거부하는 이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 가운데 거부하는 자들의 가장 지지를 얻는 절기가 맥추절인데, 그들의 주장을 반추하며 주장을 받아들일까 말까 하면서 갈등구조를 형성하게 되는데, 그래도 성경말씀이 주는 교훈과 자신의 신앙, 그리고 현대사회의 실정에 어떤 유익한 영향력을 주는가를 좀 더 생각해보고 반대 주장을 펴는 분들의 주장도 이해하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려고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첫째, 어떤 구실을 내세워서라도 하나님께 감사할 기회를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도 있지만,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예정과 그분의 계획 속에서 주님이 정하신 길을 간다면 더더구나 감사해야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결론은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유익하게 하시는 종착역에 도착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항상, 쉬지 말고,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할 수 있는 대로 감사의 기회를 많이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둘째,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감사해야 한다. 동원할 수 있는 도구나 방법은 얼마나 될까싶어 생각나는 대로 적는다면 먼저는 입술이요, 마음이요, 가슴이요(뜨거운 감정), 말이요, 노래요, 시와 찬미요, 악기요, 그것을 사용하는 입이요, 손이요, 발이요, 또 물질이요, 돈이요, 농산물이요, 부동산이요 등등 실로 많다.

어떤 신자가 말하기를, “농촌에서는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어” 라는 푸념을 늘어놓자 한 청년이 정색을 하고 “뭐요? 없어? 왜 없어? 많지! 자 세어볼까요? 쌀, 보리, 콩, 옥수수, 수수, 조, 고구마, 감자, 고추, 더 계속할까요?” 했다는 실제 이야기가 있는데….

지금은 못 먹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고 다 배불리 먹는 세상이어서 다이어트 하는 것이 대세인데, 어찌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맥추절 폐지 운운하는 것은 어떤 심사인지 모를 일이다. 이성을 사랑하게 되면, 오늘은 어떤 사랑의 고백과 표현으로 상대의 마음을 기쁘게 할까 하고 고민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인데, 우리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있는 존재가 아닌가? 그것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말씀이 우리의 최대 계명인데, 어찌하려는 계획인지 모르나 의도적으로 그 기회를 피해가려는 사람의 태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판단을 스스로 하게 될 터인데, 그 후엔 어떤 생각을 가지고 대처해야 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감사 같이 귀한 말이 어디 있는가? 우리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 감사는 최상의 언어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힘을 가진 말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데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축소한다면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지금도 우리 어릴 적 감사절의 이야기가 정겹게 들린다. 그땐 무하나 뽑아가지고 교회에 가고 배추 한포기 달랑 들고 자랑스럽게 앞 소 강대상위에 놓았던 기억이 새롭다. 물론 가을 추수감사절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데 맥추절 기억은 전혀 없다. 아마도 그땐 보릿고개라는 굶주린 시절이라서 교회가 맥추절을 지키지 않았나 싶은데, 보리타작해서 아버지가 보리 한 가마니 감사헌금을 한 것으로 보아 맥추절 행사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다만 내 기억에는 없을 뿐이다.

그 지독한 가난이 우리 어린이들의 꿈마저 빼앗아 갔나 생각하면 지긋지긋한지만, 그 가난이 키운 우리의 부요에는 오직 감사가 있을 뿐이다. 이 땅에 가난이 허락한 부요는 우리의 꿈이요, 보릿고개 넘으면서 지킨 선배 신앙인들의 헌신의 결과임을 우리가 안다면 가장 귀한 절기로 맥추절을 꼽아야 할 것이다.

첫 열매라는 말에서 더 소중히 여김을 받는다면, 첫 열매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늘 우리는 앞장서야 할 것임을 말할 필요조차 없을뿐더러 잠언 3:9의 말씀처럼 여호와 공경에 첫 열매만한 열매가 있을까 생각이 접근하면 맥추절은 최대절기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맥추절 지키나 안지키나는 논쟁은 의미 없는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말 밖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싶다. 우리의 가난의 역사와 함께 한 절기 맥추절을 사랑한다.

“주님, 어느 덧 일 년의 절반을 보내면서 맥추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룻이 받은 풍요로움을 우리에게도 지속하게 하여주소서. 북한의 주민들에게도 이 은혜를 베푸소서.”

한마음교회 담임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