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바이러스감염증 시대에 인간 모두가 삶의 고통을 격고 있다.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간 개개인은 영적투쟁을 벌인다. 그리고 고통과 영적투쟁을 통해 자기정화를 겪는다. 예레미아 선지자시대 이스라엘 민족은 무너진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성전을 보면서, 지도자들이 이웃나라로 끌려가 고난당하는 것을 보면서, 이스라엘 민족의 희망을 보지 못했다. 국민 모두가 실의에 빠져 신음하고 있었다.이 때 예레미아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고난과 영적투쟁을 통해 자신과 이스라엘민족을 정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마디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고
사람은 매일매일 누구인가와 사귐의 시간을 갖는다. 특히 그리스도인 모두는 매일 예수님과 사귀는 기쁨, 하나님과 사귀는 기쁨 속에서 산다. 사귐, 친교는 예수 그리스도인들의 약속된 기쁨이다. 예수님과 만나는 기쁨은 주님의 성육신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인은 매 예배 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인 간에 친교의 시간을 갖는다. 단절된 이웃과의 벽을 허물고, 성령 안에서 하나 됨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이 시간만큼은 모두가 성령충만하다. 친교는 너와 나의 벽을 허문다. 그리스도인의 친교는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어린이 집, 조산소, 산부인과에서의 어린이 및 신생아 학대사건이 심심치 않게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이 땅의 아이들은 어른들의 학대와 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다. 1년 전 부산의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에서 벌어진 학대 사건은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CCTV까지 공개된 이 사건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한 부모 가정을 지원하는 일에 앞장서온 필자 역시 텔레비전을 보다가 분노했다. 여기에다 텔레비전을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되는 신생아 유기사건, 입양부모에 의해 살해당한 정인이 사건, 부모에 의해 학대당하는
오늘 문득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무엇이고, 내가 살아가는 가치가 무엇인가 고민에 빠졌다. 그러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의 가치는 얼마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나의 가치는 분명 그리스도인이다는 것과 기도하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가치에 고민 할 때, 문득 요한복음 5장18절 말씀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救援)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1920~40년대 활동한 프랑스의 극작가 드니 아미엘(Deni Amiel, 1884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애굽기 20장12절)하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5계명을 우리에게 주었다. 제5계명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의 파라오 압제 밑에서 온간 탄압을 받으며, 고통당한 부모를 잊지 말라는 뜻에서 율법으로 부모를 공경하도록 했다. 부모님은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며, 우리를 키웠다. 그리고 모든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사랑으로 보살펴 주었다. 그래서 부모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흔히 말한다. 이를 우리는 ‘아카페사랑’이라고 부른
최근 SNS에 어느 며느리의 이야기가 올라 왔다. 옛날 며느리들은 시집살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부모 밑에서 형제들과 함께 공주처럼 귀하게 자란 이 며느리는 시집오기 전 부엌일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보지를 않았다. 결혼해서 처음으로 시아버지의 밥상을 차렸다. 오랜 시간이 걸려 만든 반찬은 그런 대로 먹을 만 했다. 문제는 밥이었다. “식사준비가 다 되었느냐?”는 시아버지의 말에 할 수 없이 밥 같지 않은 밥을 올리면서 며느리가 말했다.“아버님, 용서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것을 해왔습니다. 다음부터는 잘 하
그리스도인이 아무리가 강조해도 지난치지 않은 단어가 있다. 그것은 ‘사랑’이다. 신양성서의 중심사상은 나눔과 섬김을 통한 사랑의 실청이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 밥상공체를 만들고, 이들의 인권을 위해 일 하셨다. 성서의 정결법과 안식일법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법이었다. 헌데 바리새파와 대제사장들은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내세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임을 당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힘겹게 살아가는 병든 자를 고쳐주셨다. 그리고 안식일이 누구를 위해서 있느냐(?)고 물으셨다. 그렇다 안식일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만나고 헤어진다. 일생동안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이 얼마인지 헤아릴 수 없다. 만남은 인간과의 만남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많은 사물과의 만남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는다. 물은 수소2와 산소가 만나 물이 된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 부부의 연을 맺는다. 부모와 자식이 만나 가족의 연을 맺는다. 이런 만남은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이며,
사람은 누구나 기다림 속에 산다. 기다림이 있기에 모두가 내일의 소망을 갖는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내일은 해가 뜰 것이라는 소망, 기다림이 있기에 넘어져서도 다시 일어선다. 기다림은 인내이다. 인내하며,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늘 희망하고 소망했던 것이 찾아온다. 성서 로마서 15장4절은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가정은 자녀들의 생생한 교육현장이라고 한다. 그래서 부부는 항상 자녀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고,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부부가 갈등하면, 아이들은 늘 불안하다. 반대로 부부가 서로 존중하고, 서로를 인정하면, 아이들은 늘 행복하다. 대인 관계에 있어 서로를 인정하며, 마음을 주고받는다. 그래서 부부의 주고받는 언어와 행동은 늘 조심해야 하고, 따뜻한 말만
문명이 발전하고, 의학이 발달하면서, 현대인 모두는 건강에 관심을 갖는다. 정신적, 육체적 건강 모두를 말한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육체적으로도 건강하다. 예수님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한 후, 두 사람이 근심걱정을 하며, 엠마오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서 일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다
그레이스 P 팔리 목사는 자신의 저서 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가 되는 것이 자녀양육의 핵심이며, 기본이라고 했다. 이 책은 이대은 목사가 우리말로 옮겨 자녀양육의 개혁된 실천이 펴냈다. 자녀는 부모의 행동과 말을 그대로 배부고 따른다고 했다. 이것은 부모의 행동양식이 자녀교육에 있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입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 라"(엡 6:1~3)/십계명 제오장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애굽기 20장 1-17절)성서는 분명하게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의 말에 순종하라고 교육하고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 파라오
사람을 평가할 때 대부분은 “그 사람이 ‘성실’하냐”고, “사랑이 있느냐”고 묻는다. 인간은 누구나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성실하게 산다는 것처럼 어렵다. 인간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성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 모두는 죄인인 것이다. 십자가에서 대제사장과 권력자들에 의해 죽임
지난달 10일 경북 구미시 한 빌라에서 3세였던 여아가 미라로 발견됐다. 숨진 지 수개월 된 것으로 수사당국은 보고 있다. 아이는 아래층에 살고 있던 외할머니가 발견해 신고했다. 경찰은 아이의 엄마(이부언니)를 살인·아동복지법·아동수달법·영유아보호법 위반 등 4개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다. 사실을 알고 보니 아이는 외할머니가 친모였다. 소설나, 드나마에서 볼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여성의 날은 1909년 시작된 것으로 1910년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와 클라라 체트킨에 의해 세계적 기념일로 제안됐다. 그리고 1975년부터 국제연합은 매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해, 기념해 오고 있다.산업 혁명과 시민 혁명 그리고 자본주의 발전은 가사만을 하던 여성들에게 노동력을 요구했다. 당시 문제는 남
남녀가 사랑해서 낳은 아이들이 부모와 이모, 양부모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정인가 양부모에 의해 살해 당한지 지 얼마 안 돼,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친모의 방임에 의해 9살된 아이가 살해됐다. 이 아이의 주검에서 폭행으로 생긴 수많은 멍 자국과 몸이 묶였던 흔적 등이 나왔다는 보도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이모·이모부는 “훈육 차원에서 욕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후손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기 원한다. 믿음을 가훈으로 삼은 가정도 많다. 분명한 것은 믿음의 유산에는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믿음, 이웃을 생각하지 않는 믿음은 공헌한 믿음에 불과하다.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참사랑을 교육하고 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율법으로 주어졌다. 사랑이 전제된 믿음을
SBS 는 죽임당한 ‘정인이는 왜 죽었나? - 271일간의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를 방영했다. 정인이는 지난해 10월13일 생후 16개월 만에 양부모의 모진 학대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 응급실 의료진이 보기에도 아이의 상태는 처참했다고 한다. 정인이의 온 몸에는 멍투성이 였다고 방송했다. 찢어진 장기에서 발생한 출혈로 인해 복부 전체는
아무리 불러도 지겹지 않은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생명의 담지자인 어머니이다. 어머니 그 이름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 생명이며, 사랑이고, 행복이다. 때문에 어머니는 가족의 구심점이며, 어머니 때문에 형제들이 모이고, 흩어진다. 어머니는 또 인류의 생명을 이어주는 태이고, 밥이다. 깊이 패인 어머니의 주름은 우리 삶의 깊이만큼이나, 많은 고난과 역경을 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