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주의는 종교개혁 당시나, 오늘이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고등종교에서도 존재한다. 종교적 열광주의는 종교가 다르다 해도, 그 내용과 특성에 있어서 유사한 점이 많다.열광주의는 내면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성향이 있다. 우선 이들의 신앙생활에서 추구하는 내면적 경향은 강한 탈세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때문에 세상적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에 길들여진 한국교회는 신의 자리를 돈으로 대치시켰다. 국민들은 맘몬을 좋아하는 개신교 목회자들의 신용등급을 가장 낮게 평가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 국민들의 의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목회자 모두는 자신의 생활과 행동을 다시 되짚어 보아야 한다. 국민들은 목회자, 신부, 스님 중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목회자를 꼽았다. 이유는
저녁 무렵 두 사람이 침통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를 가고 있었다. 이들은 쓸쓸하고 허전한 모습으로 가슴에는 슬픔을 가득 안고 있었다. 얼만 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힘없이 걸었다. 이들은 나사렛 예수가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따랐다.희망을 걸었는데 그만 예수는 사흘 전에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고 말았다. 이들의
한반도의 정세가 위태롭다. 북한과 미국의 설전은 금방이라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것만 같은 위기감을 주고 있다. 분명한 것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곧 남과 북 모두를 공멸로 이르게 하는 지름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두 번 다시는 조국산천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국가의 이익만을 쫓아 전쟁이 발생한다면 누구의 승리도 아닌, 모두가
광복 72주년이다. 일제 치하의 고통 속에서 우리 민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또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선열들과 민족의 구원을 위해 불처럼 활활 타올랐던 신앙의 선배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린다. ‘정면교사’란 말이 있다. 본 받을 만한 대상의 행동을 보고 자신의 행동을 고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반면교사’와는
우리 민족의 해방과정을 다시한번 되새겨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열어가는 신앙의 경각심을 높여야 할 때다. 우리 대한민국의 해방의 역사는 세계 제2차 대전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1945년 미국은 일본에 두 개의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8월 6일에 일본의 히로시마에 1개의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떨어뜨렸다. 또한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시에
이례적인 고온현상으로 전 세계가 펄펄 끓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연일 찜통더위가 계속되고, 기상청에서도 폭염주의보 긴급재난문자를 보내기 일쑤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지구가 얼마나 뜨겁게 닳아 올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온전히 보존되지 못한 채 인간의 이기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지구의 생태계가 병들면서 단순히
세상말로 7-8월은 극성수기로 불리는 휴가철이다. 저마다 상반기 동안 수고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러 국내외를 막론하고 떠난다. 숙박업소와 항공편은 이미 만원이며, 계곡과 산도 휴식을 위해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렇게 활기찬 하반기를 맞을 준비를 마친다. 하지만 유독 한국교회 안에서의 온전히 쉼을 제공받는 목회자는 많지 않아 보인다.
사회가 있는 곳에는 법이 있다고 했다. 인간의 사회생활 보장과 질서의 규범이 바로 법이다. 법은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즉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직접목적으로 삼는 국가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적 규범 또는 관습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법이란 인류의 공동체 생활에 있어서 그 사회를 유지하고 또한 통제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래서 모든 국민들이 다
과도한 욕망과 충족, 소비문화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지구의 미래를 위협한다. 분명한 것은 물질적인 풍요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이다. 이것은 미래세대에 대한 오늘날 세대의 무책임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무너지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하고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한국교회는 수명을 다한 영미교
맑은 정신을 소유한 목사다운 목사, 교회다운 교회가 없는가(?)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국민들과 교인들은 묻고 있다. 역사학자인 백낙준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오늘 한국교회의 참 목사는 농촌교회를 섬기는 가난한 목사이며, 참 교회는 농촌의 작은교회이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도시고, 농촌이고, 이런 목사님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최근 동성애를 금지한 군형법 92조 6항을 적용해 모 대위가 구속 기소된 사건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급기야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군대 내 합의에 따른 동성 간 성적 관계까지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군형법 제92조 6항을 삭제하는 군형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같은 당 심상정, 노회찬, 이정미, 추혜선, 윤소하 의원을 비롯
이 세상에서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자신의 배우자일 것이다. 그래서 부부는 무촌이라고도 하고, 부부일심동체라고도 한다. 항상 서로 마주보는 거울과 같아서 상대방의 얼굴이 또 다른 나의 얼굴이라고도 한다. 내가 웃고 있으면 상대방도 웃고 내가 인상을 쓰고 찡그리고 있으면 상대방도 찡그린다는 것이다. 촌수가 없을 만큼 가까운 사이이지만 부
진정한 종교개혁은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고, 성서에 나타난 예언자의 전통과 예수님이 벌인 하나님나라운동을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에서 벌여야만 한다는 것에 대해서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종교개혁의 정신은 한마디로 성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도 구약시대의 예언자 전통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언자들은 불의한 정권과 결탁해 바벨과 맘몬을 노래하며, 우상숭배에 열
어느 사회건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바로 가정이다.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공동체도 유지되고, 가정이 파괴되면 사회도 파괴될 수밖에 없다. 각박한 현대사회 속에서 가정의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을 세우고 회복하는 기폭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인간이 태어나면 가장 먼저 가정이라는 구성원으
오늘 세계는 미국을 일극체제로 하는 자본주의 보편질서가 자연스럽게 성립되었다. 이것을 우리는 세계화라고 한다. 세계화의 꿈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한 것으로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너희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장19-20절)기독교는 5세
오늘 세계의 관심은, 인류의 평화에 있다. 그 중심에 세계교회가 있다. 이 평화는 전쟁에 의한 평화(팍스)가 아니라, 예수님의 벌인 평화(샬롬)이다. 그것은 두 가지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자기가 가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고, 또 하나는 정말 인류의 생사에 결정적인 위기를 실감하고, 이것을 사전에 막아보려는 예언자적 전통
교회마다 전도가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교회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갈수록 바닥으로 추락하다 보니 전도 여건이 갈수록 악화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버림받은 한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기만 하다. 현장 목회자들의 하소연에 일견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이기도 하다.그러나 전도가 어렵다고, 안 된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40일간의 사순절 기간을 보내면서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은 경건과 절제 속에서 회개와 갱신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오늘도 나의 고난의 삶에 다시금 오셔서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인간의 본질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찾아보면서 진리를 깨닫는 시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순절이란 부활절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의 기간으로, 부활절을 기다리면서 신앙의 성장과 회개를 통한 영적 훈련의 시기이자,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신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는 시기이다. 이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등 경건과 절제의 삶을 스스로 실천에 옮겨야 한다. 작금의 시대에 사순절을 온전히 지키는 성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