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성도들에게 사순절은 주님이 나를 살리기 위해 고난을 당하신 그 의미를 되새기는 절기이다. 부활절 전까지 여섯 번의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의 기간을 말한다.성경에는 ‘40’이라는 숫자와 관련된 사건이 많이 등장한다. 노아 홍수 때 밤낮 40일간 비가 내렸고(창7:4),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거친 광야
스마트 폰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사용 설명서를 잘 읽고 사용법을 숙지하면 된다. 그런데 아무리 스마트 폰의 사용법을 알아 숙련이 될지라도 근본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바로 밧데리 충전이다. 힘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성도들에게 주일 강단에서 설교를 듣는 것은 밧데리 충전을 하는 것과 같다.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충분하게 일주일을 동안 사용 할
한 때는 중국 부호 순위 148위에 오를 정도로 정재계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인물이 사형을 앞둔 시점에 눈물을 펑펑 쏟은 것이 주목받고 있다. 이 남성은 무려 7조원에 달하는 재산을 가진 재벌로 지난 20년간 무려 8명을 살해하고, 추가 범죄도 11개에 달하는 등 죄가 중했다. 그런 그가 지난 9일 사형 집행을 앞두고 “다시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작은 가게를
창밖에 배추흰나비 날고앞산 나무들 한참눈물 나게 푸르고 싱그럽구나.방금 숲에서 튀어나와 이웃 숲에 날아가 박히는저 새는 이름이 뭘까?뭔가 앞에 많았던 것이 훌쩍 사라진 듯가슴 한가운데가 휑하다.창을 열고 바깥공기 흠씬 들이켜도채워지지 않는 휑한 느낌조막남한 새 하나 사라진 때문은 아니다.내 앞을 날아간 새가 어디 한둘인가.예전에 날아간 새들의 자취잊고 살았
우리의 아이들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어야 할 부모에 의해서 살해당하고 있다. 아니 죽임을 당하고 있다. 이같은 소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국민들에게 전해지고 있으며, 국민들은 자녀 살해에 대해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계모의 폭행에 의해 아이들이 살해를 당하고 있는 것과 사뭇 다른 것이어서,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가 땅에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인생의 교차로를 만난다. 교차로에는 오래 머물 수가 없다. 반드시 어느 한 길을 속히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설 때가 있다. 인생은 선택이다. 선택에 따라서 인생과 그 종국이 결정 난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두 길이 있다고 하신다. 하나는 좁은 길이요, 다른 하나는 넓은 길이다. 그 길에는 두 개의 문이 있다.
예수님의 적대자들은 “예수가 먹기를 탐하고 마시기를 좋아하는 자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마가복음 2장 16절, 마태복음 11장 19절, 누가복음 7장 34절)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죄인(세리, 병든자, 가난한자, 소외된자, 여인)들과 음식을 먹는 장면을 많이 보도하고 있다.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단식을 하는데
“나는 예수를 사랑한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만약 이 시대 간디가 살아 있다면 그는 이 땅의 크리스천들을 향해 동일한 말을 하지 않았을까?오늘날 한국 땅에는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살고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듯 1,200만 성도는 아닐지라도 모래알처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초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각종 편의시설과 문화생활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빈부의 격차가 그 어느 곳보다 심한 곳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쪽은 바벨탑과 같은 초고층 빌딩들이 위용을 자랑하지만, 반대쪽에서는 걷기에도 힘든 거친 언덕배기에 삶의 터전을 꾸리고 살아가는
고려말기 역사 속에 비친 지도자의 모습들은 부패와 타락의 모습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들에게 백성은 없다. 조선 말기에도 마찬가지이다. 조선의 왕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와 포은정몽주의 단심가를 들어보면 시대의 모습을 알 수 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암울하다.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회복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최악으로 한심하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민족 대명절인 설날이나 추석 등에 고향을 내려가야 할지, 아니면 교회 출석을 위해 참아야할지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아니면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도 아니고, 선택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본 교회에 출석하기를 은근히 압박한
과거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건이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하며, 그 당시 총선에서 열린 우리당을 제일당으로 만들고, 기고만장하던 한나라당의 참패와 민주당의 몰락을 가져오며 한국 정치판의 구도를 일거에 바꾸어 버린 사건이 있었다. 당시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그토록 반발했던 것은 노 대통령이 너무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집권 일년 겨우 넘은 대통령을
얼굴 본 적 없는 미소년이여린 새순 같은 무릎을 낮추고허릴 굽혀 발을 씻긴다얼굴 가득 살얼음이고산의 슬픈 흔적처럼 거무스레 스며 있다소년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수줍음이 얼굴 가득 일렁인다찰방찰방 물과 물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와 잠시굳어버리곤 하는 공기를 희석 시킬 뿐이다천장 가득 흐릿한 조명이 지리한 듯 눈을 껌뻑인다불빛 아래 물속,꼼지락 거리는 손놀림이등
“여러분은 이방 사람들처럼 헛된 생각을 가지고 살지 말라(에베소서 4장 17절)”이 성경구절은 분별력을 잃고, 방탕한 생활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라(회개)”는 말씀이다. 세상 사람들은 허망한 꿈속에서 살고 있다. 돈을 모으고, 높은 지위를 얻고, 쾌락을 누리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이들은 이러한 것
요한복음에서는 세상을 위해 독생자가 죽으셨다고 말씀하신다. 갈라디아서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은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씀하신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한다.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인류를 귀히 보신 것처럼 하나님은 나를 귀히 보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것처럼 나를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
양 100마리 중 한 마리를 잃으면,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아 나선다고 했다. 양을 치는 목자에게 당연한 일이다. 이 비유는 잃어버린 하나가 다른 아흔아홉 보다 크고 소중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즉 하나가 아흔아홉보다 크다. 인간적인 생각에서 일은 하나를 위해서 아흔아홉을 위험 속에 빠뜨리는 행동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정치, 사
우리 땅 우리 겨레가 저기 있는데 별거한 지 어언 칠십년흩어진 땅 곳곳에서 이스라엘은 칠십 년을 버텨 귀환의 꿈 이루고이천 여년의 긴 세월 뛰어넘어 견고한 나라 다시 세웠는데우리에게는 응집력도 귀소본능도 없는 것일까통일이여 돌아오라 어서한 피 받은 한 겨레 하나로 묶여 반만년을 이어온 우리인데허울 좋은 사상으로 허리 잘리고 이웃의 훈수에 잠시 흔들렸으나 우
오늘 한국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상상을 초월한 발전을 거듭하여왔다. 그러나 그 발전의 뒤안길에는 본질이 빗나간 부작용도 매우 컷다는 것을 우리는 새삼 느낄수가 있다. 냉철하게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열어가는 예수의 DNA를 가진 신앙이 되어보자. 홍수에는 마실 물이 많지 않다는 말이 있다. 우리 민족이 일제 치하에서 독립이 되던 그 시절 이 나라에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유럽으로 간 어린이 떠돌이 1만여명이 인신매매 조직에 납치돼 노예나, 성매매 대상으로 팔려간다는 소식, 을 넘어 갈수록 잔인해지는 범죄 집단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주 장보연 교수는 본지 ‘장보연의 세상이야기’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조국을 떠나 난민촌에서 생활하는 시리아 난민 소녀들의 아픔을 소개
미국의 고(高)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일명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가 연일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당초 우리 정부는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 편입 논란을 의식해 이른바 ‘3NO’(요청·협의·결정 없음) 입장을 유지하며 신중한 자세를 취해 왔으나 최근 북한이 제4차 핵실험에 이어 장거리 미사일 발사까지 준비하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입장을 급선회해 긍정적인 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