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절 첫 주일을 시작으로 성탄시즌을 맞이하였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들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선지자 이사야도 예수님을 평강의 왕으로 소개 하였다. IS(Islamic State-이슬람의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아부 바르크 알바그다디가 이끄는 조직으로 알카에다 이라크지부에서
한국교회가 성장을 하는 동안 크게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 하나는 선교 초기부터 1919년까지 민족적, 개인적인 구원의 동기의 요인이다, 당시 한국의 민족적 주권과 사회적, 정치적 상황은 혼란된 상황이었다. 이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열강들의 이권다툼, 일본의 침략, 자본주의의 평창주의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이 때 급속한 교회성장의 물결이 처음 나타났다.
기독교의 출발을 성경 어느 말씀에 둘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아래의 성경구절을 뽑아봤다.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 히10:38, 갈3:
신앙의 조건은 제1의 조건도 겸손이요, 제2의 조건도 겸손이요, 제3의 조건도 겸손이라는 말이 있다. 섬기러 오신 예수를 성탄절을 맞이하며 다시 한번 우리의 자세를 예수님의 유전자가 있는가 정검해 보자! 그리고 예수님처럼 낮은 곳으로 임해보자!믿음 좋은 집사가 천국에 갔다. 예수님께서 보좌에서 일어나서 달려가 안아주시며 "아이고, 내 아들아 고생도 많았지
인간의 욕망이 하나님이 주신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이는 곧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지구의 온도는 갈수록 상승하고 있다. 우리의 욕심과 편리함을 위해 사용되는 화석연료를 비롯한 에너지 사용의 증가로 인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자연이 지속적으로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지구온난화는 온실가스의 온실효과에 의해 지구의 평균온도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 88세를 일기로 서거해 지난 26일 국가장으로 엄수되었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좌우명 삼아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투신했던 파란만장한 정치 인생 역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여야, 진보와 보수를 넘어 “민주주의 역사의 큰 별이 졌다”고 애도할 정도로 그가 남긴 족적은 깊고 뚜렷했다. 김 전 대통령 서거로 한국 정치사에 영욕을 남긴 ‘양
봄 비 내려 대지는 모성으로 숨 쉬며도시의 거리가로등 이고 걷는우산 속 두 연인오늘 밤은 사랑으로 젖어천상의 꽃 피우려나 제목은 ‘봄비’인데 첫 연 첫 행은 ‘봄v비’로 띄어져 있다. 의도적인지 오류인지 모르나 둘 다 각각 의미에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봄에 내리는 비 자체이며, 후자는 봄이라는 모든 절기에 내리는 다양한 비를 말한다. 전자는 비에 중심이
사람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성실하고 노력하면 자신의 꿈과 소망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알고 보면 나라와 부모를 선택 할 수 없듯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많지 않다. 사람의 삶을 고민하고 질문하면서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고 만든 학문이 철학이다. 이 철학으로도 인간이 만
11월 13일. 세상 사람들 이야기로 13일의 금요일에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식당, 술집, 공연장, 축구장 등 프랑스 파리 전역에서 IS 소행인 것으로 알려진 총격 테러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그것도 프랑스 최대의 도시이자,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중심지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서 충격이 크다. 앞서 1월 7일 프랑스 주간 풍자 신문사인
지난 14일 서울 도심은 그야말로 우리를 슬프게 만들었다. 민주주의란 결과보다도 절차가 중요하며, 목적보다 방법이 더 중요하다. 결과와 목적이 정당하다면 절차와 방법은 상관없다는 것은 폭력이요 반민주적 세력의 전형적인 생각이다. 단 한번에 힘으로 성취할 수 있는 일을 왜 그렇게 우리가 힘들게 싸우고 노력하고 애쓰는가? 지금 정부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가
얼마전 터키 보드롬 해변에서 시리아 난민 에이란 쿠르디(3살)가 주검으로 발견됐다. 세계 언론들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쿠르디에게 집중됐다. 이 아이는 누구이며,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분명 쿠르디 역시 우리의 이웃이다.쿠르디의 참담한 모습은 언론을 통해 유럽사회에 알려졌다. 지중해의 떠돌이들을 거부하던 서방국가들이 조금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 시리
근본,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사람에게서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롬1:21, 딤후3:2). 그렇지만 누구라도 예수 믿고 거듭나면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게 되는 거룩한 변화를 이루게 된다. 결국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무리는 성도밖에 없고, 그래서 하나님은 이 감사를 더없이 기뻐하시는 이유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여러 가지 모양이 있을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음악회에 참석했다가 네 사람이 돌아오는 길에 집 앞으로 지나는 마을버스 15번이 정차했기에 정신없이 달려가서 막 출발하는 마을버스를 주먹으로 두드려 서게 하고 기사의 친절한 배려로 오르게 되었는데, 동행한 아내와 다른 분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내리기에는 늦어 그냥 집까지 가서 내린 후, 늦게 귀가하는 아내로부터 핀잔을 들었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몸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들에게는 생명력도 없고,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움직이지 않는 교회는 죽은 교회이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아니다. 생명력도 없다. 바울은 성서에서 교회를 살아 움직여야 하는 생명력 있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활동하지 않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구실을
말이 열매를 만든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왕이 한 광대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구해오게 하고, 또 다른 광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을 찾아오라고 했다. 얼마 후 두 광대가 각각 구해온 것을 상자에 담아 왕에게 바쳤다. 첫째 광대의 상자에선 사람의 혀가 나왔다. 두 번째 광대의 상자를 풀었더니 거기에서도 사람의 혀가 나왔다.
지난 13일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는 테러가 프랑스 파리의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테러는 반인륜적이며, 반문명적인 범죄행위이다. 이번 테러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IS를 피해 세계 곳곳을 유리방황하는 시리아 난민들의 삶은, 더욱 비참하지나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미 일부국가에서 시리아 난민을 받지 않겠다고 국경을 봉쇄하기에 이르렀다. 국내의 기독교를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연쇄 테러로 인한 사망자가 130명 선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피해 규모도 놀랍지만, 알려진 테러의 수법이 잔인무도하기 그지없다. 카페, 공연장, 식당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무고한 시민을 향해 총기를 난사하고 불특정 군중을 겨냥해 자살 폭탄공격을 감행한 그 잔혹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이번
2015년도 한 달 남짓 남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저마다 새해에 세웠던 계획을 돌아보고, 최종적으로 점검하는 순간이다. 누군가는 알찬 한해였다고 후한 점수를 매길 수 있고, 또 누군가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로 눈살을 찌푸리기도 할 것이다. 일이 계획한대로 잘 풀렸거나, 그렇지 못했거나 어찌됐든 자신을 돌아보고 다가올 새해를 구상할 수
세계 역사의 운영자는 하나님이시다. 고양이 앞에 생선의 신세는 죽은 신세다. 누구나가 그런 처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역사 교과서가 그런 신세이다. 역사의식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 역사는 권력을 가진 자의 기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후세대들이 역사를 통해서 배울 것이 없다. 성경을 보면 비인간적 비도덕적인 기록들이 나온다. 물론 성경은 세계
전 세계에서 가장 기부와 자원봉사를 많이 하는 나라가 어디일까. 선진국이라 자처하는 미국, 아니면 유례없는 기독교 부흥을 일궈낸 대한민국일까. 아쉽지만 미국도 우리나라도 아니다. 전 세계에서 기부와 자원봉사에 최선을 다하는 나라는 바로 미얀마로 조서됐다.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의 ‘세계 기부 지수 2015’ 보고서에 따르면 미얀마는 66점(총점 100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