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낳고, 결혼을 하고, 직장에서 승진하면서 새로운 일들을 창출하는 것들 속에서 우리는 형통함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한 세대가 지나고 나면, 또 그 후손이 다시 일어나서 새로운 가정을 꾸미고 앞날의 주인공들로 우뚝 솟아오른다. 필자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최근에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즉, 또래 친구들이 학교를 갈 때에 같이 공부할 기회를 갖게 되는 것
얼마전 우리는 준전시상태라는 휴전 이후 초유의 대북 위기를 경험하였다. 물론 북한의 저자세와 협상의지로 졸지에 평화국면으로 전환되었지만, 아쉬운 것은 여기에 이 땅의 주역의 한축임을 자임하는 교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전쟁이나 천재지변 같은 위기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고 또한 추해지는 것인데, 이를 막고 영적인 보호막을 치열하게 제공하
선진국이란 세금의 규모도 있겠지만 세금을 국민을 위해 투명하게 쓰는 나라이다. 지도자의 부정부패가 아닌 투명도를 말하는데 교회의 재정도 마찬가지이다. 투명한 재정을 위한 규모가 있는 교회 중에 모범적인 사례 교회도 있다. 그러나 대형 교회의 재정의 비리로 인해 개척교회 목회자들이 같이 도매로 취급받고 있다. 한겨례 신문에 나와 있는 사례를 보면 기가 막히다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광화문 빌딩 앞을 지나는데 교보문고 글판이 눈길을 확 붙잡았다. 오늘날 우리 가정과 사회를 너무도 적절하게 담아낸 말인지라 한참 서서 생각에 잠겼다. 어디서 발췌한 것인지 궁금해 원문을 찾아봤다. 정희성 시인의 ‘숲’이라는 작품이었다. 전문은 이렇다.
벌써 오래된 과거지사가 되어 버렸지만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장로교 제90회 총회는 역사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되는 검은 한 획을 그은 해로 기억하고 있다. 예장 측(구 합동 측)과 개혁측은 합동이냐? 영입이냐? 하는 가르마도 제대로 타지 못한 채로 3,500여 교회가 마치 불랙 홀에 빨려 들어가듯이, 쓰나미에 밀려가듯이 일만 교회운동의 제물이 되어 흡수
오늘 대한민국은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 노사간의 갈등이 심각하다. 양극화 현상은 나라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망국병임에 틀림없다. 이제 양극화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병리현상이다. 정치권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 논쟁 속에서 소모적인 다툼을 계속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괴리감은 갈수록 벌어지고 있
오늘날 한국교회는 분열과 갈등에 신음하고 있다. 하나 된 한국교회는 너무나 먼 꿈일 뿐이다. 이는 교단 간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서로가 이해관계에 얽혀 자신들의 기득권만 주장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교회는 대사회적인 영향력을 갈수록 상실하고 있다. 계속되는 마이너스성장 속에서 한 줄기 희망마저도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일각에서 한국교회의 회
바야흐로 장로교 총회 시즌이 도래했다. 한국교회 다수를 점하는 장로교는 거의 9월 중에 일제히 총회를 개회한다. 장로교의 본류라 할 수 있는 예장 통합과 합동, 기장은 나란히 100회기 총회를 맞는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장로교는 1912년에 총회가 조직되었으나 일제 말 3년간 총회를 열지 못했고 6.25 전쟁 발발로 1년간 지연돼 올해 제 100
대다수의 장로교단 총회가 일제히 열리는 9월이 다가왔다. 각 교단은 총회 준비 막바지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모두가 성총회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장인이 구슬을 한 땀, 한 땀 꿰듯이 몰입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는 대부분의 장로교단이 100회 총회로 준비하고 있다. ‘100’이라는 숫자는 주는 의미도 있지만, 추락한 한국교회를 다시 되살려 보겠다는
최근 차별금지법 추진과 서울 시청광장 퀴어축제 개최로 교계를 넘어 전 사회의 논란이 일고 있는 동성애 문제에 대해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절대 반대를 외치고 나서 주목을 끌었다.한국교회의 대사회적 입장을 대변해 온 사)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대표회장 신신묵 목사)는 지난 9월 2일 서울 연지동 여전도회관에서 ‘동성애 결사반대와 북한도발방지를 위한 특별기도회’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 소유의 벽제중앙추모공원을 불법점유하고 있는 최춘경씨와 납골당의 설치권자인 김장수 목사가 본지 기사에 대해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과 관련,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증거불충분에 따른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본지 을 비롯한 여러 교계언론은 그동안 아무런 권한이 없음에도 납골
“저는 낚시를 참 좋아합니다. 비바람이 불지라도 한 여름 밤 모기가 달려들어도 고기를 낚을 수 있는 것은 물 위에 0.5cm 나와 있는 찌만을 바라볼 때였습니다. 인생의 어두운 긴 터널을 빠져나와 주님을 위하여 산다고 발버둥 칠 때 참으로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흔들리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왔기 때문
2013년 기준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81.9명으로 국내 평균 자살률의 3배에 이릅니다. 전체 연령 평균 자살률 만으로도 OECD 국가 중 1위이니, 노인 자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노인 자살률이 이처럼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국인들은 삶에 대한 의지가 떨어지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노인
그리스도인의 이 세상에서의 삶은 흔히 광야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 가나안 땅을 향하여 나아 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름길이나 편한 길로 가게 하지 않고 광야의 길을 통해 행진케 했던 역사적 사실에서 비롯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인생길과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의 여행길은 여러 면에서 비슷함을 발견
귓불을 할퀴고두 뺨을 때리면서종점을 망각한 채 달려가던지리한 겨울 눈바람잦아질 날 없더니그토록 기다렸던춘삼월 봄바람 불어와도봄이 봄답지 않은 것은 왜일까늙은 지구의 모함일까저 북녘 하늘골골샅샅 들려오는 아사(餓死)의 신음성 때문일까그래도오늘 난봄 언덕에 서서올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상처뿐인 창백한 봄을 손짓하면 기다리고 있다 시는 음률과 은유라는 기본적인
침어낙안(沈魚落雁)은 여자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고기를 물속으로 가라앉게 하고 기러기를 땅으로 떨어지게 할 만큼 그렇게 아름답다는 뜻이 되겠는데,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장자’ 제물론(齊物論)에 설결(齧缺)과의 대화에서 왕예(王倪)가 말한 이야기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사람은 소와 돼지를 먹고, 사슴은 풀을 먹으며, 지네는 뱀을 맛있
예수께서 눈멀고 벙어리 된 병자를 고쳐주셨을 때이다. 백성들은 경이로운 반응을 보인 반면, 바리새인들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힐난한다. 사탄은 인간을 갖가지 고통과 질병에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 나라를 전복시키는 존재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하나님 나라를 전복시키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그 일을 놓지 않는다. 그러한 결과는 뻔하다. 유턴해서 돌아가면, 무엇인가가 보일 텐데 왜 실패를 반복하면서까지 하던 일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른 일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또한 이것은 아이들 교육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숙제도 않고, 텔레비전에 눈을 고정시키고
우리말 국어사전은 "공동체"(共同體)를 "생활과 운명을 같이하는 조직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가 "교회"라는 말과 함께 "공동체"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공동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의미 때문이다. 공동체는 구성원들 사이의 친밀하고도 인격적인 교제를 전제한다. 이런 교제가 있기에 생활과 운명을 같이할 수 있게 된다. 교회는